인간은 무엇으로 살 것인가
AI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
불편한 진실이지만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토론 수업 중 한 학우의 고백이 강의장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우리가 AI기본법과 AI윤리가 무엇인지를 토론하면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본인은 이미 AI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몇 명의 비정규직을 직접 해고했다는 것이다. 본인은 정규직이라 그래도 안심이지만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AI는 인간의 100분의 1 비용으로 더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뽑아낸다. 이미 침범은 시작되었다. 아직 내 자리가 무사할 뿐이다.
각 산업 분야에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중요한 의사 결정은 인간이 더 낫다"라고 자신하지만, 그 말은 이미 과거의 논리가 되어버렸다. AI는 전략 기획, 보고서 작성, 법률 자문, 심지어 창작 영역까지 잘 해내고 있다. 사람들은 AI가 만들어낸 산출물에 대해 뻔하다느니 거짓이 섞였다느니 타박을 하지만 그것은 AI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불편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불쾌하고 부정하고 싶을 만큼 AI는 빠르게 진화했고 확실한 견제 대상이 되어버렸다.
개발자, 중간 관리자, 전문직—차례차례로 위험하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고 과연 어떤 영역이 안전할 것인지 말들이 많지만, 진실은 냉정하다.
"대체되지 않을 곳은 거의 없다."
안전지대는 없다. 다만 속도 차이만 있을 뿐
전략 기획가는 "AI가 데이터 분석을 대신할 것"이라 말하고, 개발자는 "사업기획이나 전략보고서 만드는 일에서 AI의 생선성이 높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기만에 가깝다. 남이 하는 일을 AI가 대체할 수 있다면 내 일 역시 그러할 것이다.
LLM은 이미 논리적 기획과 설득력 있는 문서 작성에서 인간을 압도하고, 몇 줄의 코멘트로 홈페이지, 팟캐스트, 영상까지 뚝딱 만들어 낸다. 안전지대가 있다면 기술 개발의 경제적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 사각지대이거나 절대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보호받는 신성의 영역정도일지 모른다.
결국, AI의 대체는 범주가 아닌 시점의 문제일 뿐이다. 국가가 규제로 완충한다 해도 미국과 중국이 AI 경쟁에서 앞다퉈 경쟁하는 한,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AI를 활용해 기존 분야에서 압도적 성과를 내거나, AI가 아직 닿지 않는 곳을 찾아 포지션을 재정의하는 것.
인간의 새로운 역할: 존재의 가치를 창조하는 자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더 근본적이다.
"AI가 아닌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기술이 노동을 해방해 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열정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동에서 자유로웠던 귀족들이 철학과 예술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했듯 우리에게 주어질 노동해방의 시간은 또 다른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 줄 새로운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변화와 저항과 낙오와 기회가 혼재하여 어지러울 것이다.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
예견된 일은 언젠가 도착하게 되어있다. 그때까지 막연한 안도감에 기대어 "AI는 실수를 한다"며 기술을 비하하는 태도는 참으로 위험하다. 인간 역시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지만, 오히려 그런 불완전함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용받고 있는 건 아닌가?
이제 우리는 두 가지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AI가 내 일을 대체할 때, 나만의 가치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
'노동에서 해방된 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인간은 본래 존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아온 우리는 마치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가치를 증명하고, 일이라는 행위를 통해 삶의 의미를 고양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이제는 기술 투자 너머 인간의 미래를 논할 때
정부와 기업이 "AI 개발에 몇 조를 투자하겠다"는 공약으로 경쟁하는 것은 듣자면 씁쓸하다. 무엇에 얼마를 쓸지를 결정하는데 수반되어야 할 진정한 논의는 "AI 시대의 인간다움"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있어야 할 텐데 이 이야기는 쏙 빠져있다. 이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교육, 복지, 노동 체계를 비롯한 모든 시스템이 재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AI는 어찌보면 가치중립적이다. 단순히 일자리를 빼앗는 적일 수도 있지만 인류가 그토록 꿈꾸던 '노동의 해방'을 가능케 하는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해방 이후의 삶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장 큰 걱정은 돈 문제일 것이고 그다음은 할 일 없는 인간이 찾아내야 할 삶의 의미일 것이다.
이제는 "대체될 직업"을 걱정하는 데 매몰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창조될 가치"에 대해 성찰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