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지키는 우리의 태도
대한민국은 질문이 금기시되는 사회다. 지식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암기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다. 극단적인 의대 선호 현상과 더불어 "왜 이걸 해야 하지?"라고 고민하는 학생보다 무작정 외우는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받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기업에서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직원을 피곤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상사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이들을 프로페셔널이라 치하한다. 이런 환경에서 건강한 질문 문화는 뿌리내리기 어렵다. 오히려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합리적 선택으로 여겨지는 기형적 인식이 확산된다. 최근의 정치적 흐름이나 계층 간 갈등, 계엄이라는 특수한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힌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알고리즘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전달하며 사람들을 필터 버블 속으로 가둔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 이데올로기에 노출되면, 비판적 사고는 마비되고 권력자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쉬워진다.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호기심과 질문은 점점 줄어가는 이상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다양한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고안된 기술이 오히려 독재적 사고를 조장하는 도구가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면한 현실이 이럴지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질문은 건강한 사회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자 민주사회 발전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질문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권력이 공정성을 잃고, 원칙과 합의에 기반한 시스템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있다. 불만은 있지만 고민은 남에게 맡겨둔 사회, 갈등이 있지만 논쟁은 허술한 대리인에 맡겨둔 이 곳, 한국은 지금 질문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를 맞았다.
그렇다면 질문하는 이들을 '불만을 가진 문제 인물'이 아니라 '건강한 지식인'이자 '민주사회의 수호자'로 지지받는 문화를 만들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 교육에서 '왜'를 되찾아야 한다
학교는 정답만을 강요하는 공간이 아니라 호기심을 키우는 장이 되어야 한다. 교과서의 내용을 의심하고 토론하는 수업, 학생 스스로 문제를 정의해 해결하는 프로젝트 학습이 확대되어야 한다. "의대에 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의대에 가려면 질문하지 말라"는 억지 주장이 통용되는 한, 진정한 지성은 자랄 수 없음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둘, 조직 문화를 '질문 친화적'으로 전환하자
기업은 직원의 의문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왜 이 업무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비효율을 개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리더는 하향식 지시보다 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조건 더해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대한 비판과 전략적 버림, 건강한 상태로의 최적화를 위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내 '피드백 루프'를 시스템화하고 누구나 두려움 없이 의견을 낼 수 있는 문화가 우선 조성되어야 한다.
셋, 질문하는 이들을 지지하는 담론을 만들자
우리 사회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을 흔히 '문제 제기자'로 낙인찍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시스템을 유지하는 감시자다. 언론과 예술계, 학계는 질문의 가치를 옹호하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사회적 대화를 확대해야 한다. "당신의 질문은 올바르다", “무가치한 질문은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해 전달할 때, 문화는 바뀌기 시작한다. 실로 강의장에서 “아무리 하찮은 질문이라도 언제나 도움이 된다”는 교수님의 독려가 일방적 강습을 자유로운 토론과 문답이 오가는 지성의 장으로 변모시키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다.
넷, 권위보다 논리를 우선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라는 말보다 "어떤 근거에서인가?"라는 대화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왜?'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습관이 중요하다. 작은 공간에서의 변화가 모여 사회의 토양을 바꾼다. '예전부터 그래왔다'는 말이 더이상 합리적 사유로 지지받을 수 없음을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여야만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다섯, 미디어와 플랫폼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자극적이고 단순한 컨텐츠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한 플랫폼을 육성해야 한다.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용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선호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개개인은 가짜 뉴스를 식별하는 법, 데이터를 해석하는 법, 논리적 오류를 파악하는 훈련을 비롯한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질문은 체제의 부패를 막는 방어막이자 다른 미래를 여는 열쇠다. 우리가 멈추지 않고 묻는 한, 권력은 함부로 독단적으로 굴러갈 수 없다. 그렇기에 질문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질문'이란 하기도 어렵고 받기도 불편한 것으로 여전히 여겨진다. 하루에 수십 개의 질문을 쏟아내던 아이는 학생이 되고 교육을 받으면서 침묵하는 어른으로 자란다.
민주주의 수호, 혁신적인 국가 건설과 같은 거대한 담론은 개인이 품기 어려운 주제다.
하지만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자명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용기,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을 지지하는 열린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