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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나이테, 역사를 새기다

지금 겪는 폭풍은 미래의 지도가 된다

by HoA

어릴 적엔 갑작스러운 고난이 닥치면 "왜 하필 나에게?"라며 원망하고 좌절하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지금은 인생이란 늘 평탄할 수 없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예방주사를 맞아도 병에 걸리면 아픈 건 매한가지지만 단지 이 고통이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음을 알기에 버텨낼 힘이 좀 생긴 것이다.


최근 환경이 혼란하여 나도, 동료들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마음이 편할 날이 없는 와중에 팀장이랍시고 부서원의 고통을 위로하는 일조차 지칠 때가 있다. 이 상황 자체도 개탄스럽지만, 더 화나는 건 우리를 이 지점까지 이끈 꽤 길었던 호황기의 무분별함이다. 그 시절을 무심코 즐길 줄만 알았던 사람들, 나를 포함한 우리 각자가 조금씩 책임져야 할 문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런 일을 나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AI의 출현, 전쟁 등 대내외 상황을 미루어 보건대 사회 전체가 변화의 국면에 와있다. 이는 단순한 "날씨"가 아닌 "기후"가 바뀌는 전환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매일의 날씨가 아니라 기후가 변화하는 국면, 우리는 이 시점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장기적 관점의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고르게 자란 나무가 아니라 고통받고 자란 나무라고 한다. 잘 자란 나무의 나이테는 평탄해 연구가치가 적지만, 힘들게 자란 나무는 나이테마다 변화의 굴곡이 선명하기 때문이. 가뭄, 폭풍, 한파—모든 시련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고 그 굴곡이야말로 과거의 기후를 읽는 열쇠가 된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나무는 평온히 살다 가볍게 사라지는 반면 고통을 겪어낸 나무는 죽어서도 인류에 지식을 남긴다. 그 굴곡진 역사가 지도가 되어 미래의 길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 삶에 닥치는 어려움 역시 그러하다. 지금의 시련을 단지 아픔으로만 남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고난의 도래는 우리가 조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 경험을 미래를 위한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마음먹는 것은 선택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사람은 본래 나약한 존재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때때로 찾아온다. 하지만 역사는 편안함이 아닌 투쟁의 기록이며 그래서 쉽게 지지 않고 투쟁하는 나로 존재해야만 나아갈 수 있음을, 더디더라도 조금씩 세상을 은 방향으로 꿀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지금, 제각각의 이유로 힘든 시기를 마주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쓰러지지 말고 용감히 버텨내자고, 이것을 미래의 자산으로 삼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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