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풍경, 기억의 조각들
도쿄의 거리는 내 취향에 딱 맞았다. 아기자기한 골목보다 넓은 개방감과 질서 정연한 공간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오다이바로 가는 길, 아이들을 위해 건담을 보러 갔지만, 어느새 시선은 후지 TV 빌딩에 사로잡혔다. 커넥터로 연결된 구형 전망대는 실용성보다는 과시욕이 느껴졌다. "공간을 이렇게나 낭비하다니, "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멋있어 보였다. 남편이 "완전 버블 시대 유물이네"라고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쿄는 단정하고 검약해 보이는 개인과 넘치는 위용의 건축물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버블'이라는 말은 항상 '과잉'과 '결핍', '고통'과 '망각'을 상기시킨다. 90년대 한국에서도 버블이 터지고, IMF라는 거대한 상처를 남겼다. 어린 시절,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던 나는 엄마가 때때로 분에 넘치는 것들을 선물해 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중학생 시절, IMF의 그림자가 덮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다행히 갑자기 찾아온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재물의 중요성과 그 허망함을 일찍 깨달았다. 절망의 기억은 흐릿하다. 내가 일군 것이 아니었기에 좌절 역시 내 몫이 아니었다.
후지 TV 빌딩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버블 시대의 건축물들은 당시에는 사치스럽고 과시적이었을 것이고, 버블 후엔 후회를 남긴 자산이었으리라.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 건물들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마치 유럽의 화려한 궁전이나 성당처럼 말이다. 한때 탐욕과 사치의 상징이었던 것들이, 어느덧 역사의 일부로 변모한 아이러니.
호황은 좋지만 버블은 고통을 함의한다. 하지만 버블이 터진 후 겪었던 시련은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물질의 가치와 삶의 무게를 일찍 깨달을 수 있었고, 그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결국 버블이 남긴 상처와 유산은 공존할 수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섞인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길게 보면, 고난이 고난만이 아니고 행운이 오롯이 행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진정한 지혜는 그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현인들은 어떤 사건에 대해 선악이나 미추를 평가하기보다 침묵을 택한다.
후지 TV 빌딩의 구형 전망대에 비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유산이 공존하는 이 도시의 풍경에서 묘한 위로를 느꼈다.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재해석되고, 아픔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