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놈으로 본 조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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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생활을 하며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때로 이상과 다르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명시적 정의와 달리, 실제로는 비슷한 사고를 가진 이들만 남아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질적 집단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나는 이런 현상을 관찰하며 조직의 획일성이 변화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조직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우연히 메트로놈 동조화 현상을 접하며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됐다. 처음에는 제각각 다른 박자로 움직이던 메트로놈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템포와 방향으로 일치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인간 조직의 동조화가 조직화의 부작용이라기보다는 필연적인 자연법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트로놈 동조화의 물리학적 원리
메트로놈 동조화의 핵심은 각 메트로놈이 놓인 플랫폼의 진동에 있다. 메트로놈들이 얹힌 테이블이 딱딱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각 메트로놈의 움직임이 테이블을 진동시키고, 이 진동이 다른 메트로놈들에게 되먹임으로 작용한다. 아무리 무작위적인 움직임이라도 조금의 치우침이 생기면 테이블에 진동이 생겨 전체의 움직임에 개개의 움직임이 동조화되도록 조정한다.
조직에서 나타나는 동조화 현상
조직에서도 메트로놈 실험과 유사한 동조화 현상이 일어난다. 조직 구성원들은 공통의 플랫폼인 조직 문화와 환경을 공유하며, 서로의 행동과 사고가 상호작용을 통해 점차 동조화된다. 이는 단순히 강요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피드백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전통적인 조직문화 구축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공명, 일사불란함, 비전공유라는 가치는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기업들이 "같은 비전과 원칙, 가치를 공유하며 같은 문화와 생각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한 마음 한 방향을 지향하기가 쉽다"라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며, 한국 조직 다수가 이런 방식의 조직문화 구축에 포커싱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조화의 양면성: 효율성과 위험성
메트로놈 동조화처럼 조직의 동조화에도 명백한 장점이 있다. 높은 응집력과 공동체 의식, 강한 로열티, 그리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끝까지 남아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응집력은 조직의 생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나친 동조화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다양성을 저해하고 창의성을 말살시키며, 변화에 대한 저항을 정당화한다. 특히 집단사고 현상으로 이어질 때 소위 이너 서클이 구성되고 업무 행태나 인재의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이 생긴다. 이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배척하거나 그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면서 비판적인 생각을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을 야기한다. 이는 일치된 듯 보이나 알고 보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을 높여 종국에는 조직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다양성의 필요성과 현실적 한계
그래서인지 현대 조직 이론은 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구성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이끈다는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은 DEI(다양성/공정성/포용성) 증진을 인사관리의 핵심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른 의견이 존재하고 그 의견이 기존의 것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모난 돌, 피곤한 부류"로 여겨져 이탈하거나 동조화하거나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제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주변이 공명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지지받거나 혁신적인 일을 꾸미기 위해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사업성 자체보다는 오너의 강한 의지, 정부 정책, 든든한 배후인 경우가 더 많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본 조직 설계의 딜레마
우리는 조직 설계 관점에서도 메트로놈 실험을 통해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메트로놈이 서있는 플랫폼이 같은 이상 다른 진동 규칙을 따르는 메트로놈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똑같은 환경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방식이나 행동 패턴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리학에서 공명 현상은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의 외력이 주기적으로 전달되어 진폭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이다. 조직에서도 기존 문화와 공명하는 사고나 행동은 증폭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약화되거나 사라진다. 주의해야 할 것은 1940년 타코마 다리가 무너졌듯이 때로는 강력한 공명이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변화무쌍하고 진폭이 큰 시대일수록 조직에는 다른 관점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다른 플랫폼의 필요성
메트로놈 실험이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다른 의견이 존재하고 그 의견이 기존의 것에 대응할 수 있게 하려면 다른 진동을 하고 있는 메트로놈이 함께할 수 있는 플랫폼, 즉 조직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기로 암묵적 약속이 된 조직 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모순적 시도보다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조직들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는 기존의 논리를 넘어서고 싶은 사람들을 조직화하여 그들끼리 공명하도록 하는 방법도 시도될 수 있다.
자연의 섭리를 인정하는 조직론
메트로놈 동조화 현상을 통해 깨달은 것은 인간이 주변과 동조화되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두 사람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때 뇌파가 동조화되어 팀워크와 의사소통을 돕는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반딧불이의 동조 깜빡임, 귀뚜라미의 합창, 심장의 심박 조율기 세포 네트워크"처럼 자연계 곳곳에서 관찰되는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
자연의 섭리와 인간 지혜의 조화
"같은 통에 넣어두고 다른 얘기하라고 하는 건 어쩌면 더 이상 의미 없는 외침일지 모른다." 자연의 섭리도, 영리한 인간의 경험도 '동조화의 불가피성'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다양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고 인정한 위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조직들이 각자의 플랫폼에서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접근일 것이다. 메트로놈들이 각자 다른 테이블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듯이, 조직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서로 다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때, 전체 시스템을 건강하게 만들고 지속가능성 역시 높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