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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자동화인가 증강인가

AI 역설 속에서 인간의 길을 묻다

by HoA

우리는 인공지능(AI)을 ‘자동화(Automation)’와 ‘증강(Augmentation)’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이해하려 시도한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자동화의 도구인지, 아니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증강의 도구인지 묻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AI라는 기술의 본질을 간과한 섣부른 구분이다. AI는 특정 영역과 기능에 갇힌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우리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동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제네바 대학의 라이쉬(Sebastian Raisch)와 스톡홀름 경제대학의 크라코프스키(Sebastian Krakowski)는 2021년 Academy of Management Review에 발표한 'Artificial Intelligence and Management: The Automation-Augmentation Paradox'이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동화와 증강은 명확히 분리될 수 없으며, 두 개념이 시간과 공간에 걸쳐 상호 의존하면서 역설적이게도 긴장(AI tension) 관계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AI기술과 활용이란 꽤나 복합적이어서 섣불리 특정 영역의 것으로 구분 지어 편입시킬 수도 없거니와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통찰은 우리가 AI에 대해 품는 막연한 불안과 기대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AI를 인간을 대체할 냉혹한 경쟁자로 여기며 일자리의 종말을 그리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의 역량을 무한히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어떤 예단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자로 그은 듯 명쾌하게 패턴화 하기 어렵고, 아직 대면하지 못한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살아온 우리 예측을 벗어나는 것이 예사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로 서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의 삶이란 본래 익숙한 것을 행하고(자동화), 낯선 것을 익히며(증강), 그 과정에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나아가는 여정이다. 어쩌면 ‘완성’이란 환상일 뿐, 우리는 그저 끊임없이 나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AI 시대 인간의 역할은 더욱 명확해진다. 익숙하고 반복적인 것은 AI를 통해 자동화하고, 미지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에는 AI를 활용해 우리의 지평을 증강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의의는 그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즉,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증강시킬지, 나아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켜낼지 스스로 ‘결정’하고 끊임없이 ‘조정’하는 역할, 이것이야말로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에게 남겨질 고유한 영역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AI가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게 될지라도, 인간의 의지는 결코 무위(無爲)를 허용치 않을 것이다. 인간은 효율성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발명된 후에도 인간은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모사로 시작된 회화가 그 가치를 잃어버린 이후에도 우리는 그림 그리는 행위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창작을 향한 우리의 욕망을 존속시켜 온 것이다. 우리는 때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고통과 행복을 흔쾌히 느끼는 존재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하는 그 고유한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임을 알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런 일을 행함으로써 존재의 의의를 느끼는 것이다.


AI가 무엇인가, AI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은 무성하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시대를 앞장서서 열고, 그 언저리 누군가는 기회를 엿보며, 어떤 사람은 본인의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또 다른 이들은 실제로 직업을 잃는 과정에 있다. 지금은 희망과 공포가 만든 긴장 상태인지라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쉬와 크라코프스키가 언급한 ‘역설’의 개념은 우리에게 깊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자동화와 증강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과 AI 역시 서로를 정의하며 함께 진화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AI에 의해 함부로 대체될 수도, 반대로 함부로 증강되어 우리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도 없는, 이 끝없이 변하는 세계의 당당한 일부이다.

바로 그 역설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술의 진화 앞에서 인간이 계속해서 인간으로 존재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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