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인간적인 비효율에 대하여
동네에 맛있는 젤라또 가게가 있다. 주말에 아이와 함께 먹으러 가려 했지만, '신혼여행'으로 인해 한동안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문득 딸에게 "신혼여행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단다. 결혼을 기념해 가는 여행이라고 설명해주자, 아이는 순진한 얼굴로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결혼한건 결혼한건데 굳이 여행을 왜 가요?"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대로다. 예전처럼 비행기 타는 일이 드물거나 여행 자체가 특별한 기념이 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고, 결혼 전에도 함께 여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굳이' 결혼식 직후에 '신혼여행'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이 '굳이'라는 질문은 최근 회사에서 겪은 일과 맞물리며 더 흥미로운 지점으로 확장되었다. 최근 업무상 아주 다양한 모니터링 지표들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특별한 인사이트를 던지지 못하는 수많은 지표들을 보며 담당자에게 물었다. "이걸 왜 굳이 병렬로 다 챙겨보는 거죠? 어떤 의미가 있나요?"
담당자의 대답은 명쾌하지 않았다. 그것이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원칙에 맞는 것도 아니었고, 의무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안 하면 이상한 일'이거나, '누군가 궁금해할지도 모르는 일'이거나, 혹은 '효용은 알 수 없지만 안하면 괜히 불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신호인지 소음인지 모를 발신을, 우리는 그저 관성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이 두 가지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AI였다면 이런 쓸데 없이 소모적인 일은 안했을지도 몰라. 어쩌면 인간에게 남은 차별성은 바로 이 '비효율성'이 될지도 모르겠어."
내 말에 남편은 "그런 걸 바로 '사치'라고 하지"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왠지 수긍이 되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은 어쩌면 '사치'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효율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비효율적인 것을 알면서도 '굳이' 행하는 것. 그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특별한 의미를 느끼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넘치면 소모적이지만 적당한 것은 아름답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질문이 남는다. 우리가 계속해도 될 관습적인 비효율과 그만해도 될 비효율은 무엇일까? AI가 모든 효율을 담당하게 될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사치'를 누리며 살아가야 할까.
동네 젤라또 사장님의 신혼여행 덕분에, 일상 속에 숨어있던 '굳이'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재미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