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by H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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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의 숙제가 늘어가면서

가끔 나와 아이의 감정이 일촉즉발의

상태로 치달을 때가 있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영어 읽기 책을 일부러 두장씩 넘기는

깜찍한 범행 현장을 목격한 나는

아이에게 소리를 빽 질렀고

무안했던 아이는 눈물을 똑똑 흘리며

남은 과제를 혼자서 마쳤다.

오늘 아침 아이의 책상을 정리하다가

새빨간 볼펜으로 또박또박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아무 일 없는 듯 출근 준비를 마치고

제이미 등굣길에 무심히 물었다.

"제이미,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면 어떻게 되게?"

아이는 퀴즈를 맞추듯 자신 있는 목소리로

"아~그건 욕이랑 비슷한 뜻이에요.

근데 죽는 건 아니에요.

그런 건 다 미신이거든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거구나, 그래서 엄마 이름을

빨강으로 썼구나?"라며 되물었고,

제이미는 순간의 당황을 재빨리 평정하고

"어?! 네, 맞아요~" 마디를 남긴 채

학교 셔틀에 올라 슝~하고 떠나버렸다.


**

오늘도 나는 패배했다.

정면 대항보다는 비밀스러운 작전에

능한 제이미에게 번번이 당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사소하고 은밀한 반격을

미소로 받는 것이 엄마 마음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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