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바란 것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었다. 여행 직전까지만 해도, 아직도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이 아빠는, 고작 5살짜리 아이와 매일 말싸움을 해댔다. 5살 아이와 어른이 싸울 일이 뭐가 있겠냐 마는, 생각보다 많았다. 아이도 결코 지는 성격은 아니라서, 서로 화내다가, 결국 둘 다 속상해졌다.
나는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푸는 것 같아, 돌아서면 매번 속상했다. 그래도 한 달 살기 여행을 계획해 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여행이 아이와 나의 상황을 마법처럼 깨끗이 씻어줄 거라 믿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작된 제주 한 달 살기. 아내가 함께하는 동안 우리의 여행은 완벽했다.
첫 번째 숙소인 세화의 숙소에서는 거실 창문으로 작지만 예쁜 정원이 보였다. 창문 아래로는 작은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우리는 이곳에 앉아서 창 밖을 보는 걸 좋아했다. 특히 비 오는 날 이곳에 앉아 떨어지는 비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한편, 숙소에서 나와서 조금 걷다 보면, '구좌읍 게이트볼구장' 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공용 운동기구들이 몇 개 있었는데, 우리는 이곳이 참 좋았다.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꼭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이는 이곳을 볼 때마다 외쳤다.
"아빠 운동하자!"
우리의 여행은 아직도 많이 남았기에, 여유가 있었다. 집이었다면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고, 채근하여 아침밥을 먹이는 등원 전쟁을 매일 같이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침을 느긋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만약 여행 기간이 짧았다면, 한정된 시간 내에 이곳저곳을 돌아봐야 해서 여행지에서도 마음이 급했을 텐데, 이번만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침에 산책하다가 말고 운동기구에 빠져, 숙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도 충분히 기쁘게 기다려줄 수 있었다.
우리의 단골이 된 게이트볼구장에서 조금만 더 걷다 보면, 세화 초등학교가 나왔다. 휴일 빈 학교의 문은 항상 열려있었고, 아이는 형님들의 운동장과 놀이터를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평일에 그 앞을 지날 때면, 아이들 등교를 지도해 주시는 할머니들께서 우리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하면, 형아들 등교 시작하기 전에 얼른 놀고 가라며 슬쩍 들여보내주셨는데, 이것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게이트볼구장에서 초등학교로 향하는 길로 걷지 않고 다른 갈래길을 걸으면 금세 바닷가가 나왔다. 해변은 깊지 않고 얕았으며, 아이가 놀기 딱 좋았다. 모래도 참 고왔다. 썰물에 웅덩이가 해변가 곳곳에 생겨나면, 아이는 파도 걱정 없이 소라게 잡이에 열중할 수 있었다.
유명 관광지도 좋지만, 이처럼 현지인처럼 동네를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차피 제주는 그간 많이 여행을 와봐서 관광지 탐방에 대한 큰 니즈는 없었다. 동네를 벗어나서 여행하고자 하더라도 큰 부담은 없었다. 아무리 먼 곳도 숙소에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었다. 미리 여행 계획을 빼곡하게 세워 두지 않아도, 전날 밤이나 아침에 잠깐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면 됐다. 그렇게 한 곳을 방문하고 오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갔고, 가고 싶은 곳이 또 있다면 그건 내일 가면 되었다. 안간힘을 써서 당장 오늘 뭔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제주 한 달 살기의 초입 생활은 내가 떠나기 전 기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물론 이것들은 짧은 여행을 와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선뜻 그러기 힘든 일들이었다. 나는 이제 막 한 달 살기를 시작했고, 앞으로 이렇게 보낼 수 있는 날들이 아직도 20일이 넘게 남았다는 사실에, 그저 마음이 행복했다. 물론, 아내가 돌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와 나는 금세 여행 오기 전 관계로 돌아갔다.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사소한 것들로 우리는 자꾸 부딪쳤고,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자꾸만 울어댔다.
'한 달 살기 괜히 왔나?'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대로 남은 20여 일을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이미 왔으니"라는 고집으로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자, 이 여행을 오기 전에 기도했던 "마법"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고집을 조금 포기하고, 아이도 자꾸 이러면 밥 줄 사람도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서로 양보하니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 조금씩 맞아가자, 아이에게 조금 더 많은 허락을 할 수 있었다.
- 쓰레기 같이 버리러 가기
- 혼자 우산 스스로 쓰기 (어린이집 등원을 매번 차로 해서 우산 쓸 일이 없었다)
- 마트 카트 끌기
- 바베큐 같이 준비하기 등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인데, 왜 집에서는 매번 "아빠가 할게, 넌 그냥 있어"라고 했었는지. 아이는 평소에 못하게 했던, 혹은 새로 해보는 일들에 너무 신이 나 했다.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자, 우리의 여행은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