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세화는 비가 자주 왔다. 어차피 아이 얼굴의 피부염으로 바깥 외출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한동안 우리는 숙소 안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마트에 가 장을 보고, 비가 안 오는 날엔 해가 진 뒤 뒷마당에서 바베큐를 같이 준비했다. 세탁실이 따로 있었기에 세탁기와 건조기 돌리느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우리에겐 하나의 놀이였다.
그러다 보니 곧 세화와 이별할 때가 다가왔다. 두 번째 숙소로 옮길 때가 된 것이었다. 아이와 나는 세화 살이를 마치고, 두 번째 숙소가 있는 서귀포로 향했다. 처음 제주도에 올 때는 3명이었지만, 두 번째 숙소로 옮길 때는 3명이었다. 숙소에 가득 늘어놓았던 짐들을 다시 정리하고, 차에 꽉꽉 다시 실었다. 굽이치는 산길을 오르고 내려, 서귀포로 향하는데 이제야 비로소 아이와 단둘이 제주 한 달 살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서귀포 숙소는 숙소를 예약하며 상상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블로그에 소개된 사진들과 같으면서도 다름에, 첫 느낌은 당황스러움이었다. 귤 밭이 있는 독채라고 하여, 나는 집 주위로 넓은 논과 귤 밭이 널려 있고 그 가운데 여유롭게 서 있는 자연 속 감성 숙소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숙소에 가까워질수록 어딘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이 길로 들어가면 농가 마을이 나오는 것 같은데??'
자동차 핸들을 잡고 오밀조밀 돌담을 끼고 밀도 높게 모여 있는 마을 안으로 접어들었다. 아스팔트가 가득 깔려 있는 동네의 모습은 힐링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골목은 좁았다. 핸들을 좌우로 요리조리 돌리며, 마음에 불안을 안고 숙소를 찾아나갔다. ‘여기가 정말 맞나?’를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감성 숙소라기보다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집과, 꽤 크지만 상상보다는 작은 귤 밭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보이는 비닐하우스들. 감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과연 숙소 안은 어떨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숙소에 들어섰다. 그러자 분명 블로그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 숙소가 나타났다. 그런데, 달랐다. 분명 비슷하긴 한데, 많이 달랐다. 사진 속 가구, 배치, 채광 모두 동일한데, 느낌이 달랐다.
사용감이 많은 흔들의자와 스툴 의자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숙소에 오고 갔다는 걸 아주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의자 위 패브릭 커버에 짙게 나 있는 얼룩들은 선뜻 그 위에 앉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블로그 사진 속에서 본 멋진 헤링본 나무 마루 바닥은, 실은 나무 무늬의 장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마 아래 여유롭던 해먹은 제주의 잦은 비 때문인지 잔뜩 녹이 슬어 있었다. 그리고 싱크대 아래 비치된 드럼 세탁기는 한번 돌리면 엄청난 소음이 나서, 밤에는 절대 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물이 샜다) 나는 항상 세탁기와 건조기를 밤에 돌리는, 밤의 세탁 요정이었는데 그 루틴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상상 속의 감성 숙소는 순식간에 현실 숙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으면, 블로그에서 봤던 느낌의 사진이 얼추 나왔다는 것이 묘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두 번째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