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숙소인 서귀포 숙소로 도착한 당일의 일이다. 차에 실어 놓았던 짐을 숙소로 가져와 다시 풀었다. 제주 오기 전부터 '근육둘레띠증후군' 진단을 받은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렸는데, 제주도에 와서 혼자 짐을 다 운반하다 보니 다시 또 어깨가 욱신거렸다.
주인 할머니를 만나 인사하니, 아빠와 아이 둘만 왔다는 소리에 눈초리가 묘하셨다. 주인 할머니가 물어보시지도 않았는데, 괜히 말을 급히 덧붙였다.
"애 엄마는 같이 왔다가 먼저 갔고, 저랑 애가 함께 있을 거예요."
"아~~그래요?"
그렇게 짐을 풀고, 아이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숙소를 옮긴 첫날이니, 오늘은 숙소에서만 있기로 한 터였다. 그런데 저녁 즈음 돼서 문밖에서 '똑똑' 하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 보니, 주인 할머니였다. 손에 스뎅 그릇을 하나 쥐고 내게 휙 던지듯 건네주신다.
“물횐디, 아침에 고기 잡아온 거 가지고 무쳤소. 드셔 보셔요~”
“감사합니다~” 하고 그릇을 들여다보니, 빨간 고추장을 푼 물에 얼음과 김, 회가 가득했다. ‘인심 좋으시네’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안을 힐끗 둘러보시더니, 이내 측은한 얼굴로 한마디 하시는게 아닌가.
“쏘주도 필요하셔? 한 병 갖다주까?”
평소에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는 터라, 마음만 감사히 받고 인사를 드렸다. 이때만 해도 '인심이 좋으시네?'하고 훈훈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문을 닫고 보니, 왠지 기분이 묘하다.
'할머니의 표정이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아니겠지?'
아이와 나는 그저 여행을 온 것뿐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까 처음 인사할 때도, 아빠와 둘이 왔다는 말에 이상한 눈빛이셨는데...
그냥 느낌이겠지 했는데, 주인 할머니의 오해는 두 번째 숙소에 체류하는 내내 이어졌다.
우리 숙소는 일종의 별채였다. 주인 할머니의 안채가 있고, 그와 마당으로 연결되어 있는 바깥채였다. 물론 우리 숙소의 문은 안채를 바라보지 않고, 바깥쪽 귤밭을 바라보고 있어서 사실은 별개의 집으로 봐도 좋았다. 다만 가운데 마당을 공유하고 있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하려면 안채 바로 옆에 딸린 세탁실 베란다로 가야 하다 보니, 우리는 주인 할머니와 자주 마주쳤다.
그렇게 세탁실 베란다로 가다 보면, 마당에 놓여있는 붕붕 자동차와 킥보드가 아이의 관심을 항상 끌었다. 빨래 가지러 가다 말고, 아이는 어느 순간 마당 한편의 붕붕 자동차 위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우리 물건이 아니라 아이에게 얼른 내리라고 소리쳤지만, 주인 할머니가 허락을 한 이후로는 마음껏 놀게 하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빨래를 빨래통에 한가득 넣고 세탁실로 가고 있었다. 아이는 날 따라오다 말고, 또 붕붕 자동차와 킥보드를 집적 거리고 있었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엄만 어디 갔어??"
할머니, 아내는 집에 잘 있답니다...
그 이후에도 주인 할머니는 종종 아이에게 아내의 소재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