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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어라운드 Aug 27. 2024

친구는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야

또래를 발견했다


서귀포 숙소에 도착한 날의 일이다. 아이와 나는 숙소로 도착해서, 짐을 풀고 숙소 밖으로 나섰다. ‘동네가 어떻게 생겼나’ 하고, 구경을 할 요량이었다. 차 두 대 지나갈 정도 넓이의 아스팔트 골목길을 저벅저벅 걸으니, 갈림길이 나왔다.


정면은 마을회관이요, 왼쪽은 멋들어진 다이닝 식당, 오른쪽은 이 근방에 유명한 수국 밭 가는 길이었다. 마을회관 앞에는 곧 다가오는 주말에 동네 체육대회를 한다고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멋진 다이닝 식당은 자물쇠가 걸린 채, 오늘만 휴일인 건지 당분간 휴업인 건지 폐업인 건지 알 수가 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러한 사잇길로 접어들었을 때, 아이의 눈을 번뜩이게 만드는 광경이 있었다.


어느 집 돌담 밑으로, 아이 두 명이 연신 재잘거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뭘까?’


궁금해서 다가갔다. 그러자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나뭇가지로 돌담 아래로 보이는 나무뿌리와 흙을 손에 든 나뭇가지로 연신 쑤셔대고 있었고, 다른 아이 하나는 그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기 벌레 있어, 벌레!”


벌레란 말에, 우리 아이의 눈이 번쩍하며 빛났다. ‘이런 건 놓칠 수 없지~!!‘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에 우리 아이도 참전하여, 돌담 아래 허물어진 부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엔 개미 밖에 안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아이들끼리 재잘재잘, 벌레를 소재로 이야기 나누더니, 먼저 와 있던 아이들이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서로 작별의 인사도 하지 않고, 처음 함께 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 당연하다는 듯이 헤어졌다. 아쉬움도 없이.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반갑고도 보기 좋았다. 집이 아닌 낯선 곳으로 여행을 와서, 처음 보는 또래 친구를 만나고, 스스럼없이 같이 노는 모습. 내가 아이에게 바랐던 그 모습이었다.



‘친구 사귀기’의 기억


아이가 이제 막 기관 생활을 시작할 무렵, 한두 달도 아니고, 무려 3년을 넘게 코로나19와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친구 사귀기‘였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모르는 사람과 만나면 전염이라도 될까, 그저 맹목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리 삶은 철저히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친구 관계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다.


이유는 또 있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밖에서 다른 친구들과 만나보게 해 보세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모습을 관찰해 보세요.”


아이가 친구와 놀이하는 모습, 친구와 갈등 상황에서 보이는 행동들에 대해, 관찰해 보라 했다. 그리고 그런 경험 속에서, 부모인 우리도 아이를 더 이해하고, 아이도 성장할 수 있게 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에,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 중 친한 친구 몇의 부모에게 연락해, 밖에서 약속을 잡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겨우 약속을 잡았어도 한쪽 아이에게 감기 증상이 생겨 약속을 취소하곤 했고, 겨우 만남을 성사시켰어도 아이들이 놀다가 서로 다투고 울음을 터뜨려 양쪽 부모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서로 매우 어색한 얼굴로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간혹 선배 엄마 아빠들로부터, 아이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이러저러한 노력을 했다는 얘길 들었을 땐,


‘그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그게 그렇게 어렵나’


하는 생각들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 내가 부모가 되어 겪어보니,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싶었다. 그렇게 아이와 아내와 나는 몇 번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가 친구를 만드는 건지, 부모가 다른 부모를 친구로 만드는 건지 모를, 어색한 사회화 연습을 꽤 오랫동안 이어나갔다.



친구는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처럼 참으로 어색한 친구 사귀기 노력을 덜 하기 시작한 때는, 아이가 4살이 끝나갈 무렵 시작한 캠핑 여행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도 한번 캠핑을 가보자 하고, 크기도 무지막지하게 큰, 이름하여 ‘몬스터’ 리빙쉘 텐트를 사서, 집 근처의 캠핑장을 도전했었다.


집에서 분명 유튜브와 블로그를 공부하며, 텐트 치는 방법을 수도 없이 상상했건만, 실전은 어려웠다. 거진 한 시간을 씨름하다가 겨우 텐트를 쭈글쭈글하게나마 쳐놓고는 기진맥진해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텐트 치는 동안 아빠를 도와주겠다며, 텐트 못 쳐서 끙끙대는 아빠 곁에서, 신경을 곤두서게 했던 아이가, 어느샌가 캠핑장에 놀러 온 다른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아주 친절한 형아 누나들이 있다고 했다. 공도 차고, 달리기도 하더니, 형아네 텐트로 넘어가 구경도 하고 온다.


텐트 치기도, 불멍도, 바베큐도 좋았지만, 아이의 그런 모습이 특히 좋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의 친구 사귀기에 힘을 덜 주기 시작한 때가. 꼭 캠핑 덕분이랄 수도, 그저 때가 된 거라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기억이 참 좋았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


서귀포 두 번째 숙소에 도착한 날, 만난 두 명의 또래 친구들. 그래서 나는 작은 기대가 슬며시 피어났다. 아이가 친구 사귀기 좋은 동네일 수도 있겠다는 작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가 동네 친구를 만난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제주의 농촌 마을. 이곳은 어르신들의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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