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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어라운드 Jul 12. 2024

미안해, 문이 안 열려서

아이의 사과

아이로부터 주말 출근을 강요 받았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이었음에도,

오전에 회사를 다녀와야 했다.

금요일에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서다.


이틀 전 금요일 아침,

그날따라 유난히 아이가 일찍 깼고,


아이는 피곤함을 호소하며

오후 태권도를 가지 않겠다 했다.


”오늘은 태권도 가기 싫어. 안 가면 안 돼?”

“그래도 가야지.”

“진짜 가기 싫어. 한 번만 안 가면 안 돼??”


아내와 나는 서로 눈치를 보며,

아이와 잠깐여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다 마음이 무거워진 내가,

비장한 각오로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오늘 일찍 퇴근하고 하원하면, 주말에 출근을 해야 해. 그래도 괜찮아??”


이날 오전엔 세션이 있어 일할 시간이 없었고,

오후 몇 시간 만으로 오늘까지 해야 할 업무들을 끝내기란 요원해 보였다.


설마 아빠가 주말에 힘들게 출근을 해야 한다는데, ‘아이도 양심이 있다면 그냥 태권도 가겠지’ 했다.


그런데 그런 기대는 하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


“그래도 괜찮아!”


내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자,

아내가 “내가 2시간 휴가를 쓸까…?” 하고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아이에게 되물었다.


“그럼 아빠 주말에 회사 나가야 하는데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 아빠 주말에 나가.”


나는 다문 이를 악물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세뇌하듯이 주문을 외웠다.


‘그래, 회사 일보다는 가족이 더 소중하지. 금요일이기도 하니까 일찍 와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자.’


그러면서 동시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 주말에 회사 가기 진짜 싫다…” 하고.


그리고 일요일 당일,

회사에 출근해 약 2시간 반여를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체 카봇이 뭐길래…


한편, 문제의 일요일 근무 전날인, 

토요일의 일이다.


우리는 요 며칠간 

아이의 안 쓰는 장난감들을 당근에 팔고 있었다.


아이는 이 돈을 모아, 

축구화를 사겠다고 했다.


그러나 금세 마음이 바뀌어,

카봇 수저통을 주문해달라 했다.



쿠팡 로켓배송으로 주문을 했지만,

도착은 내일 오후나 되서야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1시간마다 1번씩,

아이는 카봇 수저통이 언제 오냐고 묻는 것이다.


“내일 오후에 올 것 같아”


답변을 해주면, 

왜 그렇게 늦게 오는 거냐고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우리 집 말고도 여러 집에서 시킨 물건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배송해 주시는 거기 때문에 시간이 걸려.”

“시간이 얼마나 걸려?”

“내일 오후에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오후 언제?? 교회 다녀오면 와 있어??”

“그건 아빠도 몰라. 근데 더 나중 일 수도 있어.”

“왜 그런 거야??”


대화의 반복이었다.


아이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는 것도 대단히 빨리 받는 거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어렸을 때, 기다렸던 PC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

너무너무 사고 싶고 마음이 안달 나서 

부모님을 졸라댔고 마침내,

옆에서 보시던 아버지가 나를 테크노마트로 데려가 

당신의 용돈으로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아이도 당시의 나와 마찬가지 심정이었는지,

다음 날인 오늘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깼다.

카봇 수저통이 왔는지 궁금해서다.


그리하여, 

아빠가 안나가도 될 일요일에 회사를 나가,

꾸역꾸역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아이는 카봇 수저통이 왔나 안 왔나,

바깥 대문을 왔다 갔다 반복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와 아이의 점심 식사를 차려준 후,

피곤했던지 잠이 들었고,

나는 카봇 수저통을 부르짖는 아이와 씨름하며 

(주로 아이의 식사를 독려하며) 겨우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낸 후에도 여전히 오지 않는 카봇 수저통.


이대로 집에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아이를 꼬셔 밖으로 나갔다.


“우리 두발자전거 연습하러 나가자!”

(얼마 전 네발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 자전거를 연습 중이다)

“알겠어!”


과연 결말은 해피엔딩이었을까?



아빠, 미안해


나는 아이와 함께,

두발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전날 비가 온 게 무색하게도, 

하늘은 햇빛이 쨍쨍했다. 

강렬한 직사광선에 몸이 뜨거웠다.


아이의 팔과 다리에 보호대를 착용시키고,

자전거에 태웠다.


그런데 아이는 보호대를 착용하면서도,

뭔가 흥이 동하진 않은 눈치였다.


겨우 2-3미터를 갔을까.

몸이 한 쪽으로 기운다며, 짜증을 부린다.


집 앞 놀이터를 채 한 바퀴 돌지도 못했는데,

자전거를 그만 타겠다 했다.

얼마 전까지 탄 네발자전거의 추억이 그립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전거 대신 킥보드를 타겠다고 한다.


얼마 타지도 않았는데 이러니,

아빠도 마음이 짜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

킥보드를 끌고 내려왔다가, 

다시 또 아이 마음이 바뀌어, 

킥보드는 두고 몸만 내려오게 됐다.


그런데, 아이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했다.


“아빠, 모래 놀이터 가자!“


모래 놀이 장난감을 가지러,

다시 집에 가자 했다.


아들아,

아빠 똥개 훈련 시키는 거니.


내 이마에도 빠직 힘줄이 솟아났다.


이제부터는 아빠와 아들이 아니라,

한마리의 수컷과 수컷 간의 대등한 결투였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정 그리 가고 싶으면 아빠는 여기 있을 테니,

너 혼자 집으로 다녀오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이가 이대로 포기해 줬으면 하는 마음 반,

어차피 아이가 현관 비밀번호도 잘 누르니 

알아서 다녀왔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한 말이었다.


“알겠어!!”


아이는 주눅도 들지 않고 당당하게 외치며,

 아파트 1층 공동 현관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는데,

아이가 오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공동 현관문 안을 들어가 보았다.

엘리베이터는 우리 집이 있는 층에 멈춰 있고,

계단을 통해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집으로 들어가 버렸나…’


궁금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같이 싹 틔어 올랐다.


그래도 한번 믿어보자 싶어서,

다시 놀이터로 돌아와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아빠!”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아파트 안을 들어가 보니,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영차 영차 모래놀이 장난감이 든 흰색 가방을 들고, 막 문을 나오고 있었다.


같이 내려가 걸어가는데, 

아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빠 미안해.”


주말 근무에 지쳐, 

더위에 지쳐,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고,

아이가 연이어 입을 열었다.


“아빠 미안해… 1층에 왔는데 문이 안 열렸어. 그래서 다시 집으로 올라갔어. 아빠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아이 키가 작은 탓에,

자동문 센서가 작동을 안 해서,

1층 문 앞에서 아빠를 목 놓아 불렀던 모양이다.


근데 아빠가 오지 않자,

다시 집으로 올라가 엄마를 깨워 도와달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왠지 마음이 울컥했다.


오늘 내 마음에 여유가 부족했던 이유는,

정말 아이로 인한 주말 출근 때문이었을까? 

더위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변덕 때문이었을까?


“아빠 우리, 이제 진심으로 재밌게 놀자!”


뒤를 잇는 아이에 말에,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모래놀이를 

저녁 먹기 전까지 하고 돌아왔다.

(같이 했다기보다는, 지친 아빠는 주변을 지키고, 아이는 놀이터에서 사귄 친구와 재밌게 놀았다)



한편, 낮잠 후 기운을 차린 아내는

육아의 바통을 이어 받아,

아이 씻기기와 저녁식사, 

그리고 과일 대접까지 해주었으며,

나는 그대로 아이 방에서 뻗어버렸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 보니, 이번엔 아이가 잘 시간이라, 

아이와 또 자네 마네 실랑이를 또 해버린다.


이렇게 자성을 하는데도,

좀만 지나면 아이와, 아내와, 

작은 것으로 또 다시 마음 상하고 

투닥 거리게 되는 것이…


훌쩍 여행을 가고 싶어지는 날이다. 

(기승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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