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은 잠수사, '바다 호랑이' 이야기
'바다 호랑이'라 불리던 한 잠수사가 있었다. 그가 겪은 삶과 상처를 다룬 영화가 나왔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영이 남아 영화관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홍대 입구에 있는 독립 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2025년 6월 25일에 막 개봉한 정윤철 감독의 <바다 호랑이>를 보았다. 미국에서 잠시 방문 중인 친구 S의 초대였다. 중요한 일을 치르고 한동안 아팠던 S가 기력을 회복해, 이렇게 함께 영화관에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곧 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쉽게 헤어지나 했는데 영화 초대를 한 것. S가 회원이라 초대권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고, 독립 영화를 함께 보는 시간이어서 더욱 뜻깊었다. 젊음의 거리 홍대입구니 더욱 좋고.
인디스페이스는 홍대 입구 역 8번 출구 근처 롯데시네마 8층에 바로 자리하고 있었다. 12시 반 낮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독립 영화라 그렇기도 하고, 관객들은 10명 남짓. 인디스페이스는 코로나 때 폐관의 위기에 처했는데 영화배우와 관계자들이 후원해서 살려냈다는 것이 S의 말이다. 내가 앉은 I 열 6번 의자 앞줄 의자 뒷면을 보니 배우 ‘여진구’의 이름이 보인다. 일어나 내 의자 뒷면에 쓰여 있는 이름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배우 ‘이제훈’이다. 그 옆 S의 의자 뒷면 이름은 ‘후니스트’(이제훈 팬클럽)이다. 독립 영화 전용 상영관이 이렇게 살아남고 영화인과 관객들도 같이 살아남은 것을 생각하니 뭉클하다.
<바다 호랑이>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호랑이인 김관홍 잠수사의 실화에 기반을 둔 영화이다. 김탁환 소설가가 이 실화를 <거짓말이다>라는 소설로 만들었고 시나리오 작업부터 제작, 감독까지 정윤철 감독이 맡았다. 정윤철 감독은 <말아톤>을 만든 감독이고 오래전 재미있게 본 <슈퍼맨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의 감독이기도 하다. 내가 이 글에서 자꾸 주변 이야기만 맴도는 건, 이 영화의 핵심을 꺼내기가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려면 그때의 일을 되살려야 한다. ‘세월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아직도 끝나지 못한 이야기.
이번 영화는, 그때 들려지지 못했던 목소리들—특히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세월호 사고 구조 작업에 참여한 이들로는 해경이 있었고, 큰 인양회사 언딘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과는 별도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이 있었다. 김관홍 잠수사는 구조/시신 인양 작업에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이다. 커다란 세월호 전체 이야기에 묻혀 한 사람, 한 사람의 상처, 고통, 슬픔은 들을 겨를 없이 지나갔다. 이 영화는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잠수사들이 해경과 국가의 무심함에 어떻게 상처받아 가는지 보여준다.
이야기는 김관홍 잠수사가 잠수병에 걸려서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때문에 반복되는 악몽에 시달린다. 시신을 꼭 안고 인양해 올라오던 스트레스로 인해 남의 살이 몸에 닿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아내와 아이들의 살이 닿는 것을 피해야 하고 그들을 안아 줄 수 없는 것이 괴로운 그는 고시원으로 나가서 홀로 지낸다. 신체적으로는 어깨 괴사가 왔고, 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신장은 투석해야 할 정도로 망가졌다. 김치복이라는 그와 함께 일하던 젊은 잠수사는 잠수병의 고통으로 인해 자살한다.
그 와중에 과실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류 창대 팀장의 증인을 서야 한다. 기소된 팀장도 억울하다. 사망한 50대 민간 잠수사를 과도하게 작업시켜 죽게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다. 그곳은 전쟁터였다. 민간 잠수사들은 규정된 잠수 한계 두 번을 넘기고 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 번씩 잠수하기도 했다. 김 잠수사와 젊은 잠수사도 그들 가운데 있다. 그러나 사망한 잠수사는 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망한 것이다. 팀장의 잘못은 없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사망 피해자 딸은 전 과정에 걸친 잠수사들의 입장과 수고로움을 어렵게 이해하고 기각시켜달라는 탄원서를 전달한다. 여기에서 재판 이야기는 끝난다.
영화는 심리상담으로 대화 치료를 하며 심적 고통을 헤어 나오려 노력하는 김 잠수사를 보여 준다. 김 잠수사는 나래라는 여학생의 시신을 구해서 올라오다가 놓쳐서 인양해 올라오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사실을 나래를 홀로 키워 온 나래 어머니에게 고백하고 둘은 서로 다른 상처 지옥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다. 영화는 드디어 곰 인형을 사서 집으로 가서 아이들을 안아주는 김 잠수사를 비추어 준다. 불행 중 다행인가? 그나마 안타까운 해피엔딩인가? 그는 이제 꿈꾸던 두바이로 떠날 수 있을 건가?
영화는 픽션 도중 하나의 사진을 보여준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실제 사진. 김관홍 잠수사는 2016년에 잠수병으로 사망하였다. 세월호 사고는 2014년에 일어났으니 2년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억장이 무너져 침묵만이 남는다.
이 영화는 내용뿐 아니라 영화의 형식과 제작 방법도 눈길을 끈다. 화면을 보면서 곧바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이 영화가 얼마나 섬세하게 연출되었는가였다. “우리는 지금부터 연극을 시작할 겁니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저예산인 탓에 스튜디오 하나에서 모든 촬영이 연극처럼 이루어졌다고 한다. 수중 장면 촬영도 마찬가지다. 물 없이 꿈같이 흐르는 조명 빛으로 바다와 바닷속이 표현되었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하나의 기법의 예를 보여주는 셈이다. 제작도 대형 투자사의 투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참여와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개인 투자자들의 긴 명단이 인디스페이스 의자 뒷면의 이름만큼이나 감동을 준다.
주디 갈랜드가 부르는 강렬한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You will Never Walk Alone)가 주제가처럼 흘렀다. 역경을 뚫고 은빛 하늘을 바라보세요.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는 않을 겁니다. 마침 내가 속한 합창단의 작년 제1회 정기 공연의 타이틀이자, 주제곡이었다.
네이버를 참고해 보니 영화에 대해 극명하게 갈리는 의견들이 있었다. 봉준호, 유지태 감독의 극찬을 받은 이 영화로 무심한 국가와 사회의 경각심이 일깨워질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영화는 영화일 뿐, 사회는 변화 없이 그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자조적인 의견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을까. 비슷한 사고의 반복, 비슷한 대처의 반복만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먹먹해진 가슴으로 생각한다.
호랑이가 강이나 바다에서 헤엄치는 꿈은 ‘자신의 일이 어떤 기관을 통해 원활히 진행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김관홍 잠수사의 삶은 그런 해몽과는 정반대였다. 그의 이름은 남았지만, 삶은 구조받지 못했다.
고군분투했던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명복을 빈다.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7/16 (수) <타인의 고통 앞에서: 연대, 회피, 조롱> 입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연재 중입니다
월/수/금: <삶철학: 길 위의 질문들>
화/목/토: <관계와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