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무안 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폭발 사고는 탑승객 181명 중 2명을 제외한 179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었다.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고 나는 사고로 입원한 병원 병실에서 뉴스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말문이 막혔고 곧 거대한 슬픔이 밀려왔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의 고통은 말로 다 담기 어려울 것이다. 사고 수습은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사고 원인 규명과 생존자 구조, 다른 하나는 희생자의 시신 수습과 유족을 위한 장례 및 보상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전혀 알지 못하는 이의 고통을 불쑥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뉴스 속 사고, SNS에서 떠도는 영상, 지인의 비보처럼 예고 없이 다가오는 고통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이 드는가? 외면할까, 함께 아파할까, 아니면 그냥 넘길까?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보통 세 가지 태도를 보인다. 연대하거나, 회피하거나, 혹은 조롱한다.
제주항공 사고 직후, SNS에는 추모 글과 함께 분노, 슬픔, 연민의 글들이 올라왔다. 타인의 고통 앞에 슬픔과 애도의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통 앞에서 연민의 마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연대의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다. 행동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응답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 직후 자원봉사자들이 사고 현장에 달려가 유족에게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추운 날씨에 핫팩을 전하며 청소를 했다. 합동 위령식에는 수많은 시민이 찾아와 추모의 쪽지를 붙였고, 온라인에서는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아픔을 함께합니다’ 같은 문구가 해시태그로 공유되었다. 약 28만 명이 추모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대는 결코 위선이 아니다. 배우 한석규는 30년 만에 연기대상을 받는 자리에서 기쁨을 말하기보다 이런 날 자신이 상을 받아도 될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기부금을 내고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하는 이들의 모습은 타인의 고통에 연민으로 응답하는 인간다움의 한 모습이다.
그러나 고통을 보는 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외면하는 일도 있다. 그것이 바로 '회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무관심이다. 사고와 연관된 자회사에서 송년 파티에 열중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런 무심함이나 사고 소식을 차단하는 태도는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런 회피는 단순한 감정 회피를 넘어 사회적인 책임 회피로 이어진다. 물론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누구나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이 반복되면 회피는 결국 인간다움을 회의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SNS에서 조롱을 퍼뜨렸다. 악성 댓글과 조롱도 적지 않았다. "또 보상 노리네", "왜 이렇게 관심을 끌려고 하지?" 하는 식의 댓글들. 다른 누군가는 조롱 섞인 밈을 퍼 나르기도 했다. 이런 글들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기보다 상처를 덧내는 말들이다. 과거의 비극적인 사고들에서도 유족을 향한 냉소와 악성 댓글이 이어졌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민낯이기도 하다.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는 태도는 결국 인간다움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다.
고통에도 몇 가지 층위가 있다. 전쟁, 홀로코스트, 킬링필드와 같은 인간의 악행으로 인한 참혹한 사건은 극단적인 고통을 가져온다. 하지만 제주항공 사고와 같이 인간의 부주의와 무책임에서 비롯한 사고 역시 사람을 깊은 고통에 빠뜨린다. 그런데 아무 잘못 없이 받는 고통도 있다. 성서 속 욥의 이야기가 그 단적인 예다. 여기서 우리는 때때로 고통받는 이를 위로하기보다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을 본다. 욥은 아무 잘못 없이 고통을 겪지만 친구들은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라는 식으로 그의 고통을 정죄하며 조롱한다. 억울한 고통 앞에서마저 비난하고 조롱으로 대응하는 태도는 고통을 더 깊게 만든다.
우리는 모든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통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분명히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연민을 선택할 수 있다. 연민은 단지 감정이 아니다.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 힘은 현실을 변화시킨다. 사고 현장에서 봉사자들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건네는 순간 인간은 서로의 고통 속에 손을 내민다. 손 내미는 연민의 응답만이 서로를 살리고 우리 자신을 구원한다. 고통은 늘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 삶의 한복판에 나타난다. 그 고통이 나의 것이 아닐지라도 그 앞에서 우리가 어떤 얼굴을 보여주는지가 바로 우리 사회의 품격이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7/18 (금) "지금 잘 하고 있어요" 입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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