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살리고 마음을 여는 경청의 힘
그날 나는 세 시간을 들었다. 말없이,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말이 넘치는 시대, 정작 ‘잘 듣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잘 듣고 있을까?
한자로 들을 청(聽) 자를 풀어보면 귀(耳)로 듣고, 눈(目)으로 보고, 마음(心)으로 공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상대와 능동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행위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는 왜 듣기 어려운가>
여럿이 모여 이야기하는 경우와 두, 셋이 호젓이 대화하는 경우를 나누어 생각해 보아야겠다.
미국에서 잠깐 다니러 온 친구가 여러 명의 친구가 모인 자리에 초대받아갔다. 대화하기 어려웠다고 아쉬워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대화하기가 어렵다. 열 명이 넘어가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야기를 주도하기 마련이다. 서로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만 앞세우는 경우도 잦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는 굳이 내 이야기를 끼워 넣지 않는다. 그 시점에서 내 말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라면 듣는 것도 즐겁다. 그렇다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만 있으라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듣는 사람'도 때로는 ‘말하는 사람’이 되어 대화에 기여해야 한다. 듣기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말을 통해 관계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호젓한 대화 속의 경청>
호젓이 얘기할 때도 나는 우선 능동적인 경청자로 주로 듣는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공감하고자 한다. 열심히 듣다 보면 “그렇구나!”“그랬구나!” 호응을 많이 하게 되고 궁금한 것이 생기니 물어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나오게 되고, 그러는 것 같다. 들은 이야기를 퍼뜨리지 않음으로써 신뢰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듣는 태도는 때로는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 경청은 침묵이 아니라 참여이다.
하지만 여럿이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둘이 대화할 때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다른 한쪽은 일방적으로 듣는 대화 스타일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자기표현’을 하고 경계선을 지키면서 서로 들어주는 상호 관계가 대화에서 가장 중요하다. 나는 주로 듣기 때문에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한 번은 동네 책방에서였다. 손님도 없고 조용한 시간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책 소개를 하더니, 곧 자기 인생 이야기로 넘어갔고 나는 어느새 세 시간을 듣고 있었다. 또 한 번은 컴퓨터 수리 가게에서였다. 월남전부터 자기 자랑까지, 끝이 없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나는 끊기가 미안해서 그냥 계속 듣고만 있었다. 지나고 보니, 내 듣는 태도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가까이에도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없이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 놓는 지인이 있다. 끊을 수도, 끼어들 수도 없어, 그저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들어야 한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그 측근은 자기 얘기 다 했으니 벌써 마음은 다른 화제로 움직였고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이번에 단체로 놀러 갔을 때 이야기를 끝없이 하기로 잘 알려진 친구의 말을 내가 용감하게 끊었다. ‘중간에 말 끊지 않기’가 ‘듣기’의 기본예절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가 이야기의 핵심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녀의 인생사를 구구절절 듣게 될 뻔했다.
그러니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른 나이부터 배우는 것이 좋다. 예컨대, <초등 전 과목 어휘력 사전>은 경청(Listening attentively)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말해요. 그렇다고 단순히 듣기만 한다고 경청이 되지는 않아요.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말과 행동은 물론 그 속에 깔린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경청이에요. 예를 들면 자기 말만 떠벌리는 친구보다 내 얘기를 잘 경청하는 친구가 더 좋아요.”
좀 다른 맥락에서 <간호학 대사전>에서는 경청은 좋은 치료자-환자 관계를 만들기 위해 치료자에게 필요한 기본적 자세라고 설명된다. 경청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견을 밀어붙이는 일이 없이 우선 환자 자신의 자기표현(환자가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표정, 거동까지도 포함해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치료자의 경청을 통해서 환자는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가능해지고 정서적인 해방이 촉진되어 치료적으로 효과적인 치료관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잘 들어주기’가 ‘자기표현’과 ‘정서적 해방’까지 돕는다니 정말 중요한 것이다.
<산업 안전 대사전>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 내면에 깔린 동기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feedback) 해 주는 경청이야말로 효과적인 대화의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경청은 단순한 대화 기술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신뢰와 관계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잘 듣는 삶은, 결국 잘 사는 삶으로 이어진다.
결국,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에 자리를 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가 관계를 살린다.
루이제 린저는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만큼만 사랑할 수 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7/14 (월)에 발행되는 "바다 호랑이 -잊히지 않은 잠수사 이야기"입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