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부탁해 본 적이 언제인가? 나는 부탁을 잘 못 한다. 부탁하는 것이 힘들다. 부탁하는 일이 나에게는 작은 용기이자, 거절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과의 싸움이다. 어머니의 가정교육 덕분인지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마음이 내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의식적으로는 남에게 폐가 될까 봐 부탁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꺼려진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건 상대가 나를 이상하게 보는 불편한 시선, 어쩌면 평판이다. ‘감히 이런 부탁을 한다니!’ 하며 상대가 나를 싫어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 단순히 거절이 무안해서인지도 모른다. 거절당하는 것을 곧 미움받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 같다. 거절당하면 어때서? 관계가 깨어질까, 이전 같지 않게 될까 하면서 부탁이라는 작은 행위를 관계 전체의 성패로 오해해 왔던 건 아닐까. 또한 부탁이라는 행위가 나를 드러내는 일,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기도 할 것이다.
담백하게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될 텐데, 이렇게 심리적으로 복잡하게 생각하니 거절당할까 두려워 차라리 부탁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남에게 부탁할 때 그 첫발을 내딛는 것이 힘들어 불편함과 힘듦을 차라리 혼자 견디며 살아간다. 내 안에서 "부탁을 해야 한다"라는 목소리와 "그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싸운다. 그런데 부탁할 때 상대방이 반드시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상정하는 건 아닐까? 사정이 있으면 못 들어주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부탁하는 것은 내 자유고,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의 자유다. 그런데 왜 나는 그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탤런트 조인성이 “아님 말구”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을 봤다. 가벼운 대사였지만 당시의 나에겐 마치 깊은 철학처럼 다가왔다. 아니, 그리 쉽게?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수 있나?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결국은 반반의 확률이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아님 말구’라는 태도는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관점이었다.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 그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씩, ‘부탁은 성사보다 표현’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부탁하면 상대가 반드시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이런 태도는 항상 성공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사는 삶 전반에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거절당할까 봐 부탁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실패할까 봐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거절당할까 봐 부탁을 회피하듯 얼마나 많은 도전을 실패가 두려워 회피했을까. 삶은 결국 작은 요청과 응답의 연속이다. 내가 주저한 만큼 기회도 관계도 조금씩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역으로 거절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나는 부탁이 어려운 만큼 거절하는 것도 힘들다. 부탁을 못 들어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 그리 어렵다. 상황이 안 되면 못 들어주는 게 당연한 일인데 누군가 부탁하면 들어줘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무의식적으로는 내가 거절하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까 봐 불안한 것일 거다.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닐까, 혹은 실망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머뭇거린다.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해야 하는데도, 절대 거절을 못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자신에게 "거절 못 하는 은사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친구는 항상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힘들어지고 결국 후회하게 될 때도 많다. 내가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미움받지 않으려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이러한 인간 심리작용의 미묘함이 배경에 있을 것이다. 거절의 어려움은 단지 인간관계의 기술 문제가 아니라 자기 확립과 자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모임에서 친구는 "부탁을 못 하는 이유가 교만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친구의 말에 대해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교만은 "나는 부탁할 필요가 없다"라는 강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많은 경우 자기 보호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 방어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자신을 약하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부탁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강하다"는 모습을 유지하려는 것일 수 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내가 부탁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거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강한 척할수록 나약함은 더 깊이 뿌리내린다. 그럴수록 고립은 심화된다.
교만과 두려움은 서로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뿌리는 매우 비슷하다. 두 감정 모두 자기 보호에서 나온다. 내게도 부탁하고 부탁받고, 거절하고 거절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일이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때도 되었다. 이제 부탁과 거절이 그저 인연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닐까.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하면서 나는 예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부탁하고 때로는 망설임 없이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부탁과 거절은 내게 ‘두려움’이 아닌 ‘자유’의 표현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나와 타인을 더 솔직하게 마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