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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 없는 것들-책, 유품, 그리고 마음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비움과 채움 사이에서

by 작가서당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비움과 채움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런 것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남기고 가는 것을 우리는 정말 원하는 것일까.

*

히말라야 요가원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그곳의 텅 빈 정갈함이 좋았다. 어느 날 책방에서 우연히 일본 여자가 쓴 『버리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단샤리’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단(斷)’은 넘쳐나는 물건을 ‘끊는다’,

‘샤(捨)’는 불필요한 물건을 ‘버린다’,

‘리(離)’는 끊고 버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단과 샤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나는 ‘덜 들이고 덜어낸다 ‘고 이해했다.

있는 것을 버리기 전에 모으는 것부터 절제하자는 말로 들렸다.

그때는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줄도 몰랐다.

다만 물건을 많이 쌓아두지 않는 내 삶의 방식이 단샤리와 잘 맞았다.


그 무렵부터 집안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하나둘 끊기 시작했다.

여행지 기념품도 사지 않았고, 가구나 장식품도 늘리지 않았다.

거실에는 작은 소파 하나만 두고 생필품도 쟁여두지 않는다.

그렇게 하니 버릴 것도 많지 않았다.

지인들도 내 집에 물건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좀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럴 때면 달항아리 하나와 다기상만으로 충만했던 법정 스님의 정갈한 방이 떠올랐다.


하지만 단샤리를 실천한다고 생각했지만

‘버리기’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님을 올해 5월 이사하면서 절감했다.

가장 정리하기 힘든 대상은 책이었다.

며칠 동안 책장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책등만 바라봤다.

무엇을 기준으로 처분해야 할까?

책마다 손때와 한 시절의 고민이 배어 있었다.

떠나보내기 어려운 오래된 친구 같았다.

한때는 귀국할 때 17 상자의 책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 일로 잠을 설치고, 꿈에서도 책이 나왔다.

일본에는 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책 저장소로 쓰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책에는 공들인 시간과 밑줄, 메모, 내 삶의 흔적이 담겨 있어서 버리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전공 서적, 강의에 쓰던 책, 구하기 어려운 책은 남기고

손이 가지 않거나 다시 구할 수 있는 책은 과감히 정리했다.

그렇게 줄이고 남긴 책들이 새집에서 다시 나를 채워주고 있다.


두 번째 복병은 부모님의 유품이었다.

어머니의 이불장을 간직하며 써 왔지만,

이번 이사에서는 공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버리기는 힘들었지만, 좋은 곳에 보내드렸다.

아버지의 유품이 든 서랍장도 어렵게 정리했다.

버리는 과정에서는 죄책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내 편지도 모으지 않는데

아버지의 편지와 상장을 다 간직할 수는 없었다.

‘효도’라는 이름으로 물건을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형제들이 모이는 날, 마침 비슷한 시기에 이사한 언니도

아버지의 유품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혼자서는 버리기 어려우니

형제가 함께 있을 때 정리하자는 뜻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상자를 버렸지만 형제들이 떠난 후

나는 그것을 다시 집 안으로 들여왔다.

상자에는 아버지의 대학 노트와 오래된 장부 등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아직 아버지와 완전히 헤어질 준비가 덜 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아버지의 흔적이 하나도 없다는 건 너무 허전한 일처럼 느껴진다.


지금 내게는 '버림'이 곧 '남김'이자 새로운 채움의 시작이다.

예전에는 무엇을 비울지 먼저 고민했지만,

요즘은 무엇을 남길지를 먼저 생각한다.

꼭 필요한 것을 남기고 나머지는 비우고 버리는 것.

단샤리는 단순히 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잘 살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불필요한 것을 없애야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고 채울 수 있다.

채움과 비움이 균형을 이루는 삶,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이다.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아야 남기고 비우고 채울 수 있다.

이 과정은 무겁고도 가벼운, 끝나지 않는 삶의 과제 같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요즘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남김’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게 된다.

죽은 뒤 나는 무엇을 남길까. 물건일까, 기억일까.

혹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걸까.

삶의 끝에서 남는 것은

이름도, 물건도 아닌 사람과의 기억, 마음에 새긴 흔적일지도 모른다.

비우고 채우면서 나는 이 질문을 놓지 않으려 한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마음 기억하며 계속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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