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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보고

by 작가서당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를 아트나인에서 보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첫 영어 장편, <룸 넥스트도어>다. 총천연색 화면구성과 묵직한 주제가 영상 속에 어우러져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스페인과 미국의 합작 영화고 각본의 원작은 미국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What Are You Going Through?)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느 베이유는 산문집 『신을 기다리며』(Waiting for God)에서 “어떻게 지내요? 무슨 일을 겪고 있나요?”라는 질문이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이 배려의 질문과 그 답을 담고 있다. 틸다 스윈턴과 줄리앤 무어, 거장 알모도바르의 작품이니 주저 없이 보기로 했다.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몇 초의 예고편 클립에서 스윈턴은 “내 문이 닫혀있으면 그 일이 이미 일어난 거야.”라고 말한다. ‘그 일’은 무엇일까?


영화는 뉴욕의 대형 서점에서 소설가 잉그리드(줄리앤 무어)가 팬 사인회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깊이 천착하는 작가인 그녀는 옛 친구로부터 암 병동에 입원한 친구 마사(틸다 스윈턴)의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는다. 마사는 80년대 그들이 젊었던 시절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절친한 친구로, 현재 말기 자궁경부암 환자다. 수십 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의 거리감을 넘어 서로를 위로한다. 마사는 실험적 화학 치료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헛된 희망 속 고통에 머물 수 없다”며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 자신이 자신으로서 살아온 삶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의지로 그녀는 ‘그 일’을 준비한다. 다크웹을 통해 불법적으로 약을 구하고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그 역할을 맡아 달라고 부탁한 이는 바로 잉그리드다. 그러나 잉그리드는 고심 끝에 처음엔 거절한다. 수십 년을 만나지 못한 사이고 무엇보다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사의 부탁을 모두가 거절한 것을 알게 되자 연민과 책임감 사이에서 결국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잉그리드가 범법자가 되지 않도록 마사는 '너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해야 해'라고 당부하고 떠난다.


죽음의 순간, 우리는 왜 누군가의 동행을 원할까? 음을 향한 결단은 철저히 혼자의 몫 같지만 그 순간조차 함께 있어 줄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진실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종군 기자였던 마사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대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마사는 강인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홀로 죽음의 길을 떠나기는 힘들어하는 것이다. 처음에 동행을 거절했던 잉그리드는 결국 마사의 부탁을 수락하기로 한다. 어디까지 죽는 사람의 청을 들어줄 수 있을까?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곁에 머무는 사람 사이의 예의와 배려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마사의 부탁은 단순한 동행을 넘어 죽음 앞에서 타인에게 기대는 인간의 본성과, 함께 한다는 것의 윤리적 무게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선택을 다룬다. 하나는 존엄사를 택한 마사, 다른 하나는 곁을 지킨 잉그리드의 선택이다. 첫 번째 마사의 선택으로 존엄사라는 영화의 주제가 전면으로 드러나고, 두 번째 잉그리드의 선택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자의 태도라는 주제가 주목받는다. 영화는 첫 번째 주제에 대해 존엄사를 옹호하며 두 번째 주제에 대해 말없이 동행해 주는 배려의 윤리를 전경화 한다.

이에 대해 감독은 그저 함께하는 너그러움이 가장 큰 감정이라 말한다. 이는 원작 소설의 제목 “당신 어떻게 지내요? 당신 무슨 고통을 겪고 있어요?”와 같이, 배려의 질문을 건네며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태도이다. 베이유가 말한 최선의 배려의 질문이기도 하다. 영상으로는 마사의 집에 걸린 애도하는 여인들의 사진이 이러한 태도를 상징한다. 사진은 직접 관계가 없는 타인의 죽음에도 애도하는 스페인 장례 문화를 담는다. 잉그리드의 선택은 사진 속의 여인들처럼 말없이 동행해 주는 것, 같이 울어주는 것이다.

감독의 고국 스페인은 2021년 3월부터 존엄사를 합법화했다. 이 영화의 사회적 중요성은 존엄사를 사회적 의제로 논의할 것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영화는 여러 가지 질문을 남긴다. 존엄사를 합법화해야 할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누구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은가?


영화는 존엄사와 죽음의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한 편으로는 역설적으로 죽음과 대조되는 빛과 색깔, 생명력으로 충만한 삶의 숭고함과 역동성을 조명한다. 자연과 예술에 둘러싸인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에게는 연속성이 있다.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읊조려지는 제임스 조이스의 문장처럼 흰 눈은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공평히 내린다.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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