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참을 인(忍)의 유산

by 작가서당

아버님 생전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에는 ‘참을 인(忍)’ 자가 큼직하게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저명한 서예가가 쓴 글씨로, 그 옆에는 서예가와 아버님 성함이 함께 적혀 있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내가 25년간 유품으로 간직해왔고, 그 사이 액자 아랫부분은 햇빛에 바래 버렸다. 거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던 커다란 글씨, 인(忍). 그 크기와 의미 앞에 압도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버님이 이 글씨를 거실 한가운데 걸어두신 것은 가족 모두에게 ‘참음’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참아라, 참는 것이 옳다—설명은 간단했다. 하지만 참는 것이 항상 옳은 일일까? 액자에는 이런 문구도 함께 적혀 있었다.


참는 사람은 승리하고,

참는 사람은 성공하며,

참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액자나 ‘인(忍)’자, 혹은 참을성에 대해 가족끼리 대놓고 이야기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 말씀이 은연중에 내 안에 자리 잡아 한평생 살아가는 덕목이 된 것은 분명하다. 아버님의 이상은 유교적 군자(君子), 책임 있는 가장(家父長)이었다. 틀린 말씀은 아니다.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는 데는 참는 힘이 필요하고, 난관에 부딪힐 때도 참고 견뎌야 넘어설 수 있다. 그럴 때라면 “참는 사람은 승리하고, 성공하며, 행복하다”라는 말이 맞는다. 아버님이 말씀하신 ‘참음’은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참음에도 여러 빛깔이 있다. 불의를 마주했을 때는 참지 않고 대응해야 하며, 인간관계에서도 무조건 참는다고 해서 관계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제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표현해야 소통이 이루어지고 갈등이 해소된다. 그렇기에 참을 인(忍)의 의미는 단순히 참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과 자기 표현을 통해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참음’일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그 글씨 앞에서 과연 이 구분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참아라’와 함께, ‘말 잘 들어라’, ‘공부 잘해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양보해라’라는 말들이 부모님과 학교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반면 ‘마음껏 놀아라’, ‘좋아하는 걸 해봐라’ 같은 말은 거의 기억에 없다. 혹 들었더라도 앞선 말들이 너무 강해서 눌려버렸을 것이다.


문화 충돌은 학생 시절 자취하며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함께 거주하던 외국인 친구는 ‘양보’보다는 ‘자기 권익 보호’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거실 TV 채널 선택에서도 늘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먼저 틀었다. 협상도, 양보도 없었다. 나는 익숙하게 참았고, 내 안에선 갈등이 일었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했다. 이후로도 나는 ‘잘 참는 사람’으로 살았다. 참아야 할 때와 참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법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어렵게 배워나가야 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마다 나의 ‘참음’은 내면에서 불편함과 갈등을 일으켰지만 중요한 교훈도 안겨주었다. 그런 맥락에서 세월호 사고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주었던 무게를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참음이 언제나 미덕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다른 형제들은 이 액자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궁금하다. 나는 그 글씨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고 그저 거실의 배경처럼 존재하는 물건으로 여겼다. 그런데도 말씀의 힘이란 놀랍다. ‘참을 인(忍)’자는 어느새 내 품성 안에 스며들었고, 지금도 나와 함께 흥망성쇠를 함께하고 있다.


*

최근에 나는 나의 언니가 ‘참을 인(忍)’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린 후, 언니가 직접 답글을 남겨줘서 더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언니는 답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 ‘참을 인(忍)’은 지금까지 내 삶에 깊은 뿌리로 남아 있어요. 지금도 나를 설명할 땐 ‘참을 인(忍)’이 우리 집 가훈이었다고 소개하곤 하지요. 난 그로 인해 세상살이가 좀 편했다고 생각됩니다. 그저 참으면 되었으니까. 참는 게 제일 쉬웠으니까.” 이 글로써 언니의 삶을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나와는 좀 다른 대처이다. 나는 답했다. “아, 그랬구나. 좋았던 거네. 난 갈등도 좀 있었는데.” 그런데 언니의 답글 밑에 또 다른 사람의 답글이 달려 있었다. “참는 게 맞는 건가요? 갈등이 싫어서 참고 참다 보면 내가 옳았다고 나올까요? 정말 쉽지 않은 참을 인(忍)으로 사는 삶.” 나도 답했다. “맞아요. 참을 때와 참지 않아야 할 때를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댓글을 주고받으며 나도 언니도 그리고 독자 한 분도 서로의 삶을 비추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음’은 그렇게 지금도 우리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KakaoTalk_20250628_051422125.jpg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 삶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