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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27. 2024

매직 인 소그노 *2

*2



“찾았다.”

말려들어 간 꼬리에만 불이 들어오지 않는 높은 음자리표 조명이 깜박거리는 M의 집. A는 M이 미리 알려준 대로 창문 틈에서 하얀 봉투를 찾아 끄집어냈다. 봉투 안에는 짧은 메모와 열쇠가 들어있었다.


소그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내일 오전 10시 아침 식사 함께해요. 

- M –


손잡이가 하트모양으로 된 길쭉한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어 돌리는 A.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벽돌색 타일과 크림색 벽지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방. 벽에 걸린 아름다운 그림과 침대 옆 나무껍질을 엮어 만든 조명이 방 안의 독특한 분위기에 무게를 더했다. 


방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a는 방 한편에 있는 오래된 나무 옷장을 발견했다. 옷장 맞은편으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계단. 언제 다가왔는지 A가 서성이는 a를 지나쳐 바쁘게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끌었던 낯설고 무뚝뚝한 그 흰토끼처럼. 점점 멀어지는 A의 발소리에 a는 어쩐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황급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켜는 a.


[No Signal]


a는 화면에 뜨는 상태 메시지를 신경질적으로 끄고 플래시를 켰다. 계단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는 a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억지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는 a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어두워서 다행이야 누가 보면 어쩔 뻔했어. a는 생각했다. 수상하게 키득거리며 아래로 내려가던 a가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실수로 그려 놓은 그림처럼 계단이 휘어지는 곳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문. a가 휴대전화 플래시로 왼쪽 문과 오른쪽 문을 차례대로 비췄다. 손잡이 없이 작은 열쇠 구멍만 덩그러니 달린 똑같이 생긴 낡은 나무문 두 개.


문을 열어 볼까? 아래로 내려갈까? 


고민하던 a가 왼쪽 문에 양손을 짚고 귀를 대보았다. 고요한 반대편. 손바닥에 힘을 실어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 보는 a. 열리지 않는 문. a가 조금씩 더 강하게 문을 밀었다. 힘이 잔뜩 실린 a의 발가락 끝이 바닥에 직각으로 꺾인 바로 그때, 


달그락! 


a는 요란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했다. 잠깐의 정적.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던 a가 다시 왼쪽 문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전날 밤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듯 계단 아래쪽에서 a의 이름을 부르는 A. a는 지체 없이 뻗던 손을 거두고 A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A는 커다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있었다. 욕조에 라벤더 가루를 쏟아부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A. a는 A를 지나쳐 욕조 앞으로 걸어갔다. 알몸으로 라벤더 가루 알갱이가 회오리치는 욕조 안에 자리를 잡고 앉는 a. 점점 차오르는 향기로운 보라색 거품이 a의 몸을 찰랑찰랑 간지럽혔다.


A가 레드 와인을 조금 따라서 a에게 건넸다. a가 레드 와인을 입에 머금고 A를 올려다봤다. 치켜뜬 a의 검정 눈동자 아래로 보이는 흰자위. A는 낯설게 일그러진 a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A가 옷을 벗고 욕조로 들어가 a에게 입을 맞췄다. a가 A의 입안으로 와인을 흘려보냈다. 투명한 와인 방울이 A의 입가에 맺혔다. 흘러내린 와인 자국을 정성스럽게 핥는 a. a의 뾰족한 혀가 점점 와인색으로 물들었다. A가 머금고 있던 와인을 꿀꺽 삼키고 입을 크게 벌려 a의 혀를 빨았다. a가 낮게 신음하며 눈을 감았다. 보라색 거품이 묻은 손을 뻗어 A의 목을 끌어안는 a.


“언젠가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까 봐 두려워.”


A가 대답 없이 a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a가 희미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A에게 기대어 누웠다. 잔잔했던 욕조의 수면이 크게 출렁였다. 수면 위로 보라색 거품이 묻은 a의 가슴이 솟아올랐다. a를 부드럽게 끌어당겨 안으며 속삭이는 A.


“나는 지금 이렇게 당신을 향한 사랑과 영감으로 가득 차 있는걸.”


코끝이 간지러웠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등 뒤에서 전해지는 A의 호흡을 세어보는 a. a는 숨을 잠시 참았다가 A의 호흡에 자신의 호흡을 맞췄다.


“사랑해.”


a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놀라 움찔했다. 그런 a를 꽉 끌어안으며 a의 뺨에 자신의 뺨을 맞대는 A. A의 사랑이 a의 뺨에 묻어났다. A가 숨을 깊고 길게 내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빈틈없이 맞물린 두 사람 사이로 보라색 거품이 밀려 나왔다.







Photo l ©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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