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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골목 안 모퉁이 후미진 구석. 길을 잘못 든 택시의 전조등이 어둠 속 남녀를 환하게 비췄다. 여자를 안고 있던 남자가 여자에게서 튕기듯 떨어졌다. 남자의 풀어진 셔츠 자락이 펄럭였다. 여자는 고개를 돌린 채 흘러내린 옷을 여몄다. 여자의 뺨을 가린 머리칼 위에 달빛이 일렁였다. 멋쩍은 듯 다른 곳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젊은 남녀. 그들 뒤로 매끄러운 검은 바다가 소리 없이 넘실거렸다.
흐흠.
택시 기사가 헛기침을 했다. 젊은 남녀의 거친 호흡이 잦아들고 있었다. 후진기어를 넣고 액셀을 강하게 밟는 택시기사. 바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꾸로 돌았다. 택시는 울퉁불퉁한 돌바닥 위를 사방으로 뒤뚱거리며 뒤로 나아갔다. 택시의 하얀 전조등이 어지럽게 젊은 남녀를 비췄다. 싱그럽게 반짝거리는 남과 여. 어둠이 차오르는 골목 안에서 그들은 다시 서로를 껴안았다. 골목을 빠져나온 택시가 앞으로 나아갔다. 뒷좌석에 숨죽이고 앉아있던 A와 a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결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보드라운 밤이었다.
“여기서 내려 주세요.”
A가 정중하게 말했다. 한참 동안 같은 곳을 뱅뱅 돌며 마을 이곳저곳을 사납게 비추던 택시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깊은 밤 낯선 곳에 정차한 택시. a의 긴장한 표정이 차창에 서렸다. 공항에서부터 꼭 잡고 있던 A의 손을 놓고 배낭을 메는 a. A가 뻣뻣하게 굳은 a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a의 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손등으로 전해지는 A의 또렷한 심장박동. a가 풋사과처럼 웃었다.
a가 문을 열었다. 폭발하듯 차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바깥바람 냄새. a는 연주자가 무대 위로 입장하듯 결연하고 얼굴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
A가 택시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고 요금을 지불하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는 a. 따뜻한 빛을 뿜는 가로등 아래 나무 알림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색색의 크고 작은 종이가 붙어 있는 알림판. a는 눈을 가늘게 찌푸리고 가로등 불빛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Magia in Sogno, 97th Sogno Festival di Musica>
<매직 인 소그노, 제97회 소그노 음악 축제>
마을의 보랏빛 밤을 담은 사진 위에 축제 기간 무대에 오를 연주자와 곡명이 하얀색 필기체로 쓰인 포스터.
a는 문득 무대 뒤에서 음향 반사판 틈 사이로 훔쳐보던 A의 얼굴이 떠올랐다.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손바닥 중앙을 약지로 살살 문지르며 연주자와 곡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a. 축제의 마지막 날, 피날레 공연 란에 큼지막하게 쓰인 A의 이름과 연주곡 <매직 인 소그노>. a는 손끝으로 A의 이름을 쓸어내렸다.
“매직 인 소그노…….”
a는 야외 광장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A의 모습을 상상했다. 무대 주변에 둘러앉은 관객들 사이사이로 상냥한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가는 A의 피아노 소리. 소리는 북쪽의 바로크 양식의 교회를 휘감아 올라, 경계가 모호한 하늘과 바다에 뜬 두 개의 흰 달을 타고, 붉은 돌과 노르스름한 흙으로 빚어진 상점 사이 지그재그 난 계단을 건너 a에게로 왔다. 멍하니 포스터를 바라보던 a가 아, 하고 짧게 신음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택시가 떠나간 자리에 비스듬히 서 있는 A. A는 M의 주소를 적어온 메모지와 지도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가로등을 등지고 선 A의 얼굴이 불빛에 희미하게 일렁였다. 점점 흐릿해지는 A의 얼굴을 보며 a는 눈을 깜박거렸다. a의 가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피어올랐다. 커다란 알약 서너 개가 목구멍에 꽉 막힌 것처럼 차오르는 숨. 가슴을 지그시 눌러보고, 마른침을 삼켜보아도 엉켜버린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여 오는 공포감에 a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순간 전날 밤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듯 a쪽으로 고개를 돌려 밝게 웃어 보이는 A. 거짓말처럼 흐트러졌던 a의 것들이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쩐지 a는 크게 안도했다.
Photo l ©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