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마지막 어린이날이라며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았던 아이다. 올해는 중학교에 입학한 후 맞이한 어린이날이라 별 신경을 쓰지 않고 하루 종일 잡힌 일정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오후 아이와 마주 앉았다.
입이 한주먹은 튀어나온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내게 마지막 어린이날인데 너무 소홀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나… 그러고선 이제 어린이로서 어린이날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6시간 남았다 했다. 마지막 어린이날을 후회 없이 신나고 재미나게 보내야겠다며 가까운 친구를 부른다. 부모는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에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없단다. 떡볶이에, 아이스크림에… 평소 자주 먹지 못하게 하던 음식으로 저녁을 먹은 후 각종 게임을 하며 큰 웃음소리가 나는 시간을 보냈다.
문득 부모가 부족하면 아이가 빨리 철이 든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각 시기에 걸맞은 과제를 해결하면서 죽는 날까지 성장하는 존재다. 아이는 애착 대상과 건강한 신뢰관계를 형성하며 자존감을 높여가야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한다. 내 아이는 너무 일찍 철들지 말고, 천천히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 시기에 충족되어야 할 총량들이 온전히 채워지도록. 아이가 아이다운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도록 내가 부족하지 않은 부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다짐. 아이는 아이답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 너무 일찍 철든 아이들을 본다. 아니 어른들보다 더 실익을 따지며 영악함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과거처럼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어른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아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온통 ‘돈’이다. 지난 성소주일에 신부님께 궁금한 것을 묻는 자리에서도 초등학생들의 질문지에는 7할이 넘는 내용이 어떻게 돈을 버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안타까웠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돈 때문에 겪어야 하는 큰 문제들을 과연 얼마나 겪을까? 아마도 그 아이들의 부모나 주위 어른들의 영향을 받은 탓일 게다. 생존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 또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꿈을 꿀 것인가는 말하지 못한 것 같다.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용기를 갖고 기꺼이 모험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얻는 보람과 가치, 또 어떻게 인류에 공헌할 것인가의 고민은 허무맹랑한 망상일 뿐, 당장 오늘을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을 얻고 또 그것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벼랑 끝에 서 있기를, 좌절에 익숙해지길 강요하지는 않았던가? 본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조차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이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에서 자기혐오를 먼저 배운다는 요즘의 우리 아이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었던 것은 현실을 뛰어넘은 이런 망상가들의 끊임없는 실패와 그럼에도 이어지는 새로운 도전과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스스로를 신뢰하고 꿈을 꾸며 매일의 오늘을 살아갈 수 있었던 용기를 내었기 때문이다.
최근 기사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3포, 5포를 지나 7포 세대라고 한다.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꿈, 희망직업, 인간관계, 연애를 포기한 세대. 이들이 주축이 된 대한민국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 구성원,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 의식,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총량 불변의 법칙. 사람은 각 시기에 걸맞은 과제를 해결하면서 충족되어야 할 요소들을 채우지 못하면 심리적 문제가 잠재된 상태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부적절한 시기에, 부적절한 방법으로 문제가 되어 나타난다. 경중의 차이지만 어느 시기든지 퇴행하여 미처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을 수행해 필요한 총량을 채우게 된다. 우리의 아이들이, 청년들이, 이웃들이 각 시기의 총량을 잘 채워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우리 모두가 제 각각의 위치에서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이면 좋겠다. 이들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우리가 이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에 어울리는, 내가, 우리가 부족하지 않는 어른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