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
함께 모여서 글을 계속 쓰고 싶은 기분
1월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 수업의 에디터로 살고 있다. 늦잠 대신 매주 수요일, 토요일마다 열두 명의 글쓴이들과 함께 글을 쓰고 있다. 혼자는 책상에 잘 앉질 않으니 약간의 강제성을 두기 위해 수업을 개설하고 진행했는데, 나는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후회했다. 왜 이제야 글쓰기 모임을 했을까!
우리는 낮 12시에 모여 큰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는다. 누구는 따뜻한 커피를, 누군가는 향긋한 국화차를 마시며 각자의 필기구와 마음을 올려놓는다. 나는 2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글을 쓰는 마음의 온도를 데우기 위해 몇 가지 몸풀기 글쓰기 질문들을 소개한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색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는 대답을 한다. 누군가는 유쾌하게, 또 다른 이는 먹먹하게.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유머로 빈 여백이었던 종이에 조금씩 글이 적힌다. 이 수업에서는 띄어쓰기나 오타를 고쳐주지 않는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니까. 손 끝과 마음결에서 글이 조금 더 쉽게 나올 수 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펜을 달궈서 끝내는 연습을 한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각자가 쓴 글을 낭독하는 순간이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낭독을 부끄러워하는 학생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도, 선생님에게 질문을 받는 날이면 손과 발에서 땀이 솟아났다. 발표하는 날은 내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릴까 싶어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낭독하는 시간이다. 텍스트로 보면 슬플 거 하나 없는 글일지라도 글쓴이의 표정과 목소리의 높낮이 그리고 그 떨림을 함께 듣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마음을 울릴 수가 없다. 어떤 마음으로 그 글을 쓰셨는지, 지금 읽는 심정이 어떤 한지, 과거의 그가 겪었던 시련의 이야기들을 굳이 덧붙여 말하지 않아도 신기하게 그 진심이 들렸다. 그 덕에 첫 만남부터 나는 주책맞게 몇 번의 눈시울을 시큰거렸는지 모르겠다.
지난주에는 한 분이 '시작'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읽다가 차마 이어나가지 못하고 낭독을 잠시 멈췄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애써 웃으셨다. 수업이 끝나고 그분을 안아드렸다. 당신의 귀한 인생을 들려주셔 감사하다고, 당신의 빈 마음에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언제나 가득 차기를 바란다고.
열두 명의 글을 읽고 듣는데 꼭 열두 권의 책을 완독 한 것처럼 느껴졌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생의 기록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상처 받고 사랑받고 살아간다. 다만 그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씩 보듬어줘야 하는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기도 한다. 순간의 더미 속에서 잊힌 마음들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해서 우리 마음속에서 곯는다. 글쓰기는 그 마음을 꺼내 끌어안아 주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함께 치유받는다. 상처를 직면하는 것. 아픔을 인정하는 것. 그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편안한 숨을 쉰다.
편안한 숨을 쉬는 수요일과 토요일이 매주 기다려질 것 같다. 물론 나는 다음 주에도 울음을 참느라 혼날 것 같다. 울보가 돼도 좋다. 다 큰 어른이 매 번 코 끝을 빨갛게 물들어도 나는 당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일이 참 좋다.
키만소리 (김한솔이)
2년간 남편과 세계 여행을 하다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를 만들었다.
여행자에서 이제는 작가와 글방 에디터,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제3회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를 출간했다.
세계 여행하면서 받은 엄마의 메일을 엮어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를 출간했다.
다수의 작품을 그리고 쓰며 활발히 연재 중이다.
인스타그램 @ki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