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기분
오늘의 기분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싶은 기분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의 관한 글을 적기위해 몇 자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쓰긴 써야 하는데 영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원고 위로 스쳐가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전에 비해 미워했던 기세가 한 풀 꺾인 상태였다. 지금의 나는 확실히 무르고 쓰라렸던 과거의 나와 달라져있었다. 조금 단단하고 견고해진 호두 같은 사람에 가까웠달까. 세월이 주는 위로에 내 상처는 아문 흉터가 되었고, 이불속에서 울던 나는 조금 더 먼 곳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계기로 오늘은 조금 다른 시선의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러다 홍화정 작가의 [쉬운 일은 아니지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책을 만났다. 책 속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힘든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쉬이 건네며 위로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괜찮다는 그 말 한마디에 인색하게 군다.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고.
그 페이지를 읽자마자 환멸로 지새웠던 수많은 까만 밤들이 떠올랐다. 왜 이것밖에 하지 못하냐고. 이런 일은 힘든 측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더 잘 해내라고. 결코 남들은 쉬이 내뱉을 수 없는 말로 나를 괴롭히고 상처 주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타인에게 받은 괴로움과 슬픔보다 심한 고통을 나는 내게서 받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려웠던가. '이 정도면 잘했어'라는 말 한마디가 뭐가 그렇게 비싸서 야박하게 굴었을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돌을 던지고 등을 돌려도 결코 돌아서지 않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인데. 왜 나는 내게 모질게 굴면서 '잘 될거야'라는 그 한마디에 인색했을까. 남이라서 해줄 수 있는 말을, 나라서 하지 못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내가 나를 굳이 괴롭히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마음을 데이며 산다.
고단한 하루를 견뎌내는 동안 우리도 알아채지 못하는 생채기들이 여기저기 새겨진다. 출근길에 읽는 포털 사이트 기사 제목에서, 그 글에 달리는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댓글에서, 날을 세우며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사람들 눈빛에서,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직장에서, 농담이라고 던져지는 무지의 말들까지. 누군가 나의 어깨를 붙잡고 나쁜 말을 쏟아내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저리고 아리다. 나까지 나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이도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세상에서 진득하고 오랫동안 위로를 건넬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이제부터 남들이 주는 상처에 연연하지 않을 테다. 가시가 돋아나지 않는 푸른 날들은 파라다이스가 아닌 내게서부터 온다. 나는 지금부터 내가 나에게 준 상처를 보듬으며 괜찮다고 안아주는데 나의 시간을 쏟을 생각이다. 그 상처에 핑크빛 살이 돌면 매일 쏟아지는 칼을 품은 말들로부터 나를 지킬 것이다. 상처를 극복해가는 방법을 찾기보다 애초에 상처로 부터 멀어지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고 싶다.
그 누구도. 심지어 나도 나를 상처 줄 수 없다. 나는, 우리는 아프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까.
키만소리 (김한솔이)
2년간 남편과 세계 여행을 하다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를 만들었다.
여행자에서 이제는 작가와 글방 에디터,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제3회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를 출간했다.
세계 여행하면서 받은 엄마의 메일을 엮어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를 출간했다.
다수의 작품을 그리고 쓰며 활발히 연재 중이다.
인스타그램 @ki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