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의 서른 Nov 28. 2022

[프롤로그] 서른이 된 세 친구

우리의 서른이 아깝잖아

10.03. 현재의 집

야, 언제 시나리오 써주냐고

중학교 동창인 우리 셋은 만나면 늘 영화학도인 나에게 우리 교수님보다 더 영화제작을 종용 한다. 성격도, 전공도 다른 우리 셋이 친구인 것이 얼마나 영화 같은 일인지. 어서 우리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라는 농담이다.


우리는 16년 전 중학교 1학년 7반에서 만났다. 현재와 나는 같은 아파트의 10층과 6층에 살았다. 초등학생 딱지를 떼기 직전 이제 막 생긴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정든 친구들과 함께 졸업하지 못해 울며불며 이사를 했는데 같은 학원에서 현재를 만난 것이다. 학원 수업을 듣고 집에 가는 차에서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까지 이상하게 동선이 겹치는 아이. 누가 봐도 공부를 잘할 것 같은 아이가 현재였다. 그때 나는 눈을 반짝이며 현재와 친해지고 싶어 계속 말을 걸었다. 그렇게 함께 학원을 다니며 친해진 우리는 운이 좋게도 같은 중학교 같은 반에 배정이 되었다. 매일 같이 등교하고 하교를 했다. 성씨도 같은 우리는 이따금 아이들에게 우리는 사촌지간이라며 장난을 칠 정도로 붙어 다녔다. 그리고, 우리 둘은 섬세하고 다정한 감성을 가진 허구를 그 반에서 만난다. 여자 아이들이지만 현재의 시니컬함과 나의 우악스러움은 여자애들 취향보다는 남자애들과 어울리기 쉬웠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대략 남자애들 7명과 나와 현재까지 어울려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반 여자아이들과 큰 싸움이 났다. 중학교 1학년 한참 이성에 눈을 뜰 시기였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 무리 중 함께 어울리던 7명의 남자애 하나쯤은 좋아할 만했다. 거기에 현재와 내가 늘 그들과 함께였던 것이다. 얼마나 눈에 가시 같았을까? 핑계를 대보자면 우리는 더디게 이성에 눈을 뜬 아이들이었다. 지금의 남사친이나 여사친의 환상을 얘기한다면 ‘친구랑 뭐? 연애를 한다고?’ 하며 뒤통수나 때렸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도 모르는 새에 이미 여자아이들에게 찍힐 대로 찍혔는데, 더 나댔던 내가 그들의 불편한 시선을 참기 못해 총대를 메고 빈번하게 그들과 시비가 붙었다. 매일 불이 붙어 싸우던 쌈닭이었는데, 거기에 어느 날 섬세하고 다정한 감성의 허구가 낀 것이다. 화를 잔뜩 내던 나 때문에 여리고 어렸던 허구가 울었다. 중학교 1학년의 남자애가 책상에 엎드려서 울다니. 서로 머리 끄덩이를 잡고 허벅다리를 발로 차며 싸우던 남자애들이랑은 또 다른 종족의 남자애가 있던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 허구를 울렸다는 사실에 안절부절못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려 애썼고, 그러다 보니 친해졌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에 살던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함께 같은 학교를 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공부에 대한 열심이 달랐다. 특히 나만 유독 달랐다. 현재는 첫인상 그대로 공부를 잘해서 전교 1등을 자주 했고, 허구는 우리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성적이 쑥쑥 올라 결국 전교 1등을 했다. 나는 예체능 과목의 시험에만 우수했다. 그래서 우습게도 전교 1등 경력들을 앉혀놓고 예체능 필기시험 족집게 강의를 하고 노트를 나눔 하곤 했다. 현재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여고에 갔고, 허구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남고에 갔다. 나는 남녀공학을 갔다. 예체능을 좋아하던 나는 영화과에 진학을 했고, 허구는 남고와 공대의 루트로 대학원까지 마쳤다. 공부를 잘하는 현재는 인 서울에 법 공부도 했다. 진학한 단과대, 사는 지역까지 완벽하게 다른 우리는 서른이 먹도록 여전히 친구다.


오늘은 현재의 생일로 오랜만에 모였다. 동남아 해외 생활을 거쳐 서울에 사는 나와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허구, 고향집으로 다시 터를 잡은 현재는 좀처럼 모이기 쉽지 않다. 약속을 잡으면 번번이 깨지는데, 이상하게 고향 동네에서 번개로 모이면 만나지는 이상한 모임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는 사이다. 이번에도 연휴가 끼어 있어 부모님께 안부차 들르는 김에 현재의 생일 파티를

갑자기 하게 되었다.


서른이네 진짜.

“우리 중엔 그래도 네가 제일 늦게 서른 되네.”

“석열이 형은 뭐 하는 거야. 글로벌 나이로는 우리 아직 20대야.”

한 살, 한 살에 집착하면 나이 든 거라고 하던데. 모이니 서른이 되며 느낀 만감을 서로 나눠본다. 같은 반 친구는 어디에 리더가 됐다더라, 누구는 연애 리얼 버라어티에 나오더라 등등 서로 아는 얘기를 다 꺼내본다. 이야깃거리가 너저분하게 펼쳐지면 이따금 고민하던 것을 꺼낸다.


“나 진짜 바쁜데 무료하고, 무료한데 분주해. 이렇게 내 시간 보내도 되는 거냐고.”

“맞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들으면 내가 제일 생산성 없는 것 같고 그래.”

셋의 공통점이라고는 이제 밥벌이를 하게 된 직장인들이라는 것과 나이뿐인데, 우리가 가진 불안과 생각은 비슷하다. 이래서 친구를 하는 것일까. 그나마 내 진심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인데 정작 서로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몰라서 잠깐 만나는 이 시간에 경주를 하듯 옅은 생각을 쏟아내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입을 떼려고 할 때 ‘너무 다르겠지 이제?’라는 생각에 잠시 멈춘다.

우리 책 하나 써볼까?

내가 뱉고도 놀랐다. 일주일에 2번 이상 야근하는 직장인에게 글쓰기라니. 그렇지만 이들과의 시간을 지난 16년처럼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우린 서른이니까. 지금쯤 인생에서 무모한 짓 하나 더 저질러야 앞으로 인생에 이런 용기를 또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내 친구들의 삶이 궁금했다.

“너네 맨날 나한테 영화 하나 만들어보라며. 지금 와서 중학교 때 얘기할 수 없고, 지금 얘기 좀 들어보자. 어차피 너네 다들 블로그 하잖아. 블로그를 좀 진지하게 한다고 생각해봐.”

현재와 허구는 듣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연구실에서 일하는 허구, 법무팀에서 일하는 현재. 그리고 작은 신학교 교직원으로 영상을 만드는 내 이야기. 우리의 일상을 적어나가며 우리는 우리의 서른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각자 다른 일상 가운데 같은 고민들을 모아 이렇게 또 함께 해보기로 한다.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