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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의 서른 Dec 26. 2022

[외전] 우리의 시작

현재와 지인의 만남

애초에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유치원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게 가능해? 라며 경이로울 지경이다. 내가 못 하는 것이다 보니 약간 그게 진실일지 의심도 하기 일쑤다. 기억력이 나쁘다 보니 오랜 친구들과 어떻게 친해졌는지 그 시작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다. 저기 집구석 한편에 있는 일기들을 뒤져보면 나오려나? 오랜 친구들과 만나서 추억 이야기를 꺼내 보더라도, 근데 우리 왜 친해졌더라? 하고 미스테리 투성이로 남곤 한다. 서로 다닌 학원도, 같은 반도 아닌 친구가 그냥 자연스럽게 언제부터인가 친구가 된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인과의 시작은 어떤 드라마 주인공들이 만났었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만남이 곧 시작이었던 순간이다. 초등학생 때 학원 가는 봉고차에서 우리는 만났다. 이름은 물어보니 성이 같았다. 본관도 같아서 우리는 그냥 가족이 되어버렸다. 사실 우리 성은 대다수가 이 본관일 수밖에 없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뭐 그런 사실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지인이 프롤로그에서 말했듯 당시 친구들에게 우리는 사촌이라고 유언비어를 터뜨리고는 했는데, 딱히 정정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했던 친구들도 많았을 것도 같다. 이후에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일이 없으니 이 장난은 잠시 넣어두었다가 2016년 베트남에 있는 지인이를 핑계로 베트남에 여행하러 갔었을 때 만났던 지인이의 지인에게(어쩐지 말장난같군) 똑같은 장난을 써먹었더랬다. 사람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때는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정정을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님 말구.

아파트에서 봉고차를 같이 탄 것도 아니고 봉고차 안에서 만났기 때문에 몰랐었는데, 사는 아파트도 같았다. 아마 그때 지인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아파트도 모자라 심지어 같은 동 같은 라인이었던 우리! 나는 10층 지인이는 6층. 친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쯤 되면 당연하게도 같은 초등학교였다. 그렇게 같은 아파트, 같은 학교, 같은 학원, 같은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프롤로그를 보니 같은 순간을 두고도 기억하는 게 다른가 보다. 지인의 시점에서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의도적인 접근”이었다니! 17년 만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누가 봐도 공부 잘할 것 같았던 아이라니….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딱히 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안경이 두꺼워 그랬나? (그냥 학원에 다니면 공부 잘하는 이미지였다고 한다)

학원 봉고차에서 만난 것 치고 학원에서의 일들을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친해져서 학교 끝나고 집에서 함께 놀던 초딩들은 운명처럼 진학한 중학교에서 같은 반이 된다. 같은 반이 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을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얼핏 보면 공통점이 많은 우리였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지인이는 세 자매의 막내였고 발랄하고 통통 튀는 아이였다면 나는 조용하고 소심한 타입이었다. 그런 나를 프롤로그에서 ‘시니컬함’으로 표현한 건 나로서도 의외지만. 아무튼 조용하고 소심해서 트리플 A형이었던 내가 왈가닥 스타일(본인도 인정했으니 가감없이 써본다)의 지인이 덕분에 훨씬 밝은 아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대세를 따르는 편이고. 눈치도 많이 본다. 그래서 반골기질 성향의 지인이 아니었더라면 당시 남학생들과 섞여 있을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허구를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내 기억 속에 인터넷 소설의 한 편처럼 남아있는 추억의 한 장이다. 고등학생 때나 중학교 2학년, 3학년이 더 지금의 나와 가까운 과거이건만, 중학교 1학년 때가 지인이와 허구 덕분에 빛날 수 있었던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막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고 더 이상 초딩이 아니라 중딩으로서 적응을 해나갔어야 했던 그 변화무쌍했던 그 시기의 에피소드들은 머릿속에 소설책처럼 박혀있다. ‘참 좋을 때다’의 ‘참 좋을 때’였던 나날들이었다. 다시금 생각해보아도 우리 셋이 아직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기적같은 일이다. 30년을 살아오면서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 명이다. 중학교 1학년 때에 같은 지역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만나 지금은 다른 지역 다른 직종에 종사하고 있으니, 이렇게 같은 시작을 가지고도 다르게 살 수 있구나 새삼 느낀다. 아무래도 지역도 다르고 일하는 분야도 전혀 다르다보니 우리의 카톡방이 매번 왁자지껄하거나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이 프로젝트 다음은 무엇일까 기대하게 된다. 영화?(지인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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