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11월
가을하면 천고마비, 독서의 계절같은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올해 내 가을은 결혼식이다. 추석 을 기점으로 친지들의 결혼이 주말마다 캘린더를 채운다. 오늘 있던 사촌 오빠의 결혼식은 내게 여간 불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서른에 남자친구도 결혼 계획도 없는 내게 집안 어른들의 숱한 질 문에 마음을 상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상한 마음을 회복하기엔 주말이 짧으니까 사촌 오빠에 겐 미안하지만 경험상 이런건 피하는게 상책이다. 다행히 촬영 일정이 잡혀 핑계가 생겼다. 부모 님께 가장 좋은 핑계이지 않은가. 아직은 몸을 쓰는 것이 마음 쓰는 것보다 편하다.
좋은 핑계로 수락했지만, 월화수목금 5일을 오른 출근길을 또 오르려니 몸이 5kg 정도 무거워 지는 것 같았다. 보통의 주말에는 ‘신발을 신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스마트폰이 측정한 걸음걸 이가 500걸음 이하라면 성공한 주말이다. 그럼 성공한 주말이 많았냐고 물어보면 단언코 목표일 뿐이라고 답하겠다. 야근을 곁들인 평일을 불태우고 나면 ‘나는 지금 나를 위해 살고 있는가? 나 를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회사의 이익이나 가족의 필요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메이며 체력을 쓴다. 정처없이 서울의 아름다운 길들을 걷는다거나 매일 출퇴근으로 지나 치기만 하던 번화가 상점들을 구경한다. n년을 사귄 연인이 있었을 때보다 요즘이 오히려 더 주말 이면 강박적으로 나를 챙기게 된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혹은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나뿐이란 것을 자각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 물론 나를 더 챙기는 것은 토요일 아침 몇 시간의 잠이나 건강한 음식, 운동, 편집 작업할 때 다리를 꼬지 않고 허리를 펴는 것임을 너무 잘 알지만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는다. 가령 갓 튀긴 후라이드 치킨이나 반짝이는 귀 걸이, 인스타용 사진을 잔뜩 남길 수 있는 카페 따위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함께할 누군가를 찾는 수고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집에 가서 점검할 것은 내 마음만으로도 벅차니까. 그 사람은 오늘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 맞나? 부담되진 않았을까? 등등 더 생각이 많아지는 건 지금 나에게 무리다.
사람들이 이 직업군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카메라를 든 사람은 프로 짝사랑 꾼이라는 것이다. 카메라 앵글은 곧 하나의 시선인데 연출된 상황이 아니라면 카메라맨은 자연스 럽게 그 안에 마음을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돈 받고 업으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그것을 좋게 포장해야하기 때문에 ‘좋은 모습’으로 찍어드려야하지 않은가. 최대한 좋은 생각, 좋은 마음으로 찍자고 결심하면 행복하고 좋은 그림을 찾게 된다. 즐기는 마음으로 카메라 줌인과 레코딩 버튼 을 연신 누르다보면 베실베실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멀리 있는 피사체를 줌인 버튼으로 내 코앞에 갖다 놓고 기록하는 것인데, 찍히는 사람은 그걸 알리 없다. 이걸 들고 또 컴퓨터 앞에 앉 아 편집하다보면 그 사람 얼굴에 점이 어디 있고 웃을 때는 눈이 없어지거나 앞니로 아랫입술을 지긋이 무는 행동을 하는 걸 알아채곤 한다. 그럼 혼자서 내적 친분을 가지게 된다. 작은 신학교에 학생이 2천명 남짓인데 내가 광장을 걸으면 지나치는 모든 사람이 연예인 같고 그렇다. 가끔 은 진짜 만났던 사람인지 카메라를 통해 본 사람인지 헷갈려서 반갑게 인사했다가 민망해한다. 그럼 나는 다 아는 사람 같은 친근함을 느꼈다가 한순간에 외로워진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할 때 서로에 대한 정보값의 격차가 느껴질 때 짝사랑, 짝애정, 짝우정 등의 감정을 느낀다. 그런건 당 연해지지도 않아서 상대방이 알아챌까, 부담스러워질까 걱정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자주 내 마음이 앞서지 않게 점검하는 편이다. 그게 사적인 사이에도 버릇처럼 생겨서 누굴 만나는 건 너 무 좋지만 피로하다. 그래서 주말에는 혼자만의 취미나 버킷리스트를 지울만한 활동을 한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주말에 몰아서 하다보니 평일과 다름없이 일정이 빡빡해진다. 오늘은 아침부터 독서모임이 있다. 코로나 이후로 비대면으로도 활동을 할 수 있어 책을 좀 읽어보자며 부담 없이 신청해놨었다. 이 모임에서는 정해진 책을 읽고 돌아가며 책을 요약하고 자신의 경험 과 생각을 나눠보는 발표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이번주가 마침 내가 발표할 차례이고, 이게 하필 촬영과 겹쳤다. 어제 저녁부터 세운 계획은 아침 일찍 학교 스튜디오에 나가 발제 내용을 정리하 고 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10시 독서 모임을 끝내고 밥을 먹고 1시까지 촬영장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사실은 주중엔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들었다. 지난 1달 동안 이 책의 무게는 내 출근 가방 뿐만 아니라 마음도 무겁게 했다. 쉽게 끝나지 않는 숙제 같달까. 처음에는 점심시간에라도 읽어 볼까 했다가 분주함에 실패했다. 두 번째로는 퇴근 후 카페에 가서 독서를 하는 상상을 해보았는 데 솔직히 말하자면 2번 간 카페에서는 사진만 잔뜩 찍고 함께 간 언니와 수다만 떨었다. 그래서 마지막 일주일에야 자기 전 읽을 챕터를 정해두고 읽었다. 그러다보니 이번 주는 평일도 내내 고 역이었다. 챕터 하나 읽고 인상 깊은 내용들을 정리하는게 적어도 1시간에서 2시간은 족히 걸렸 다. 그러니까 하루에 2시간씩은 계속 덜 자게 되었다. 그렇게 해도 1-2챕터는 덜 읽었다. 다행히 내가 발표하는 부분은 책의 중간 부분이었다. 어젯밤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덮으면서 ‘이건 내일 발표 준비를 먼저 하고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계획은 계획일뿐이다. 생각보다 1시 간 정도 늦게 나와 준비를 시작했다. 비대면이고 글로 발표 내용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나는 피피티를 만들기로 했다. 별다른 것이 아니라 책에서 감명 깊었거나 핵심이 되는 문장을 화면에 띄워놓고 그것에 대해 말해보려고 했다. 겨우 시간에 맞춰 다 만들고 모임의 호스트가 책의 내용 을 개관해주는 동안 스윽 나머지 챕터를 읽었다.
내 앞 순서의 발표자의 발표가 시작되고 내용에 집중하려고 할 때쯤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내 가 준비한 발표의 내용까지 앞 사람이 다 해버리는게 아닌가. 다시 공지를 확인해보니 내가 큰 목차의 챕터와 부제의 챕터를 헷갈린 것이다. 생각해보니 총 3명의 발표자가 있고 내가 제일 마 지막이니 당연히 내가 제일 끝 부분을 맡은 것이었다. 왜 제대로 확인을 안했을까 자책하는 마음 이 들었다. 책읽기로 내면을 채우는 행위와 더불어 일말의 성취감을 얻고 싶어서 참여한 것인데 첫 스케쥴부터 아주 꼬여버렸다. 기분은 바닥을 쳤지만 앞 사람의 발표가 끝나기 전에 입이라도 뗄 수 있도록 준비해야했다. 카메라를 끄고 손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행히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거나 생각을 구석에 메모해두는 버릇이 있어 앞 부분은 만든 피피티 양식에 옮겨 적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눈으로 스윽 읽어버린 뒤 챕터였다. 앞 사람의 발표를 들으며 괜한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준비했다. 내 차례가 되기 직전 메시지를 통해 나는 호스트에게 발표할 부 분을 잘못 알았다는 것을 미리 공유하며 양해를 구했다. 양질의 독서 활동을 위해 시간을 내 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기도 해서 혹시 나보다 잘 말해줄 사람을 마지막까지 찾은 것이다. 그러 나 화면을 통해 문장들을 준비해온 것은 나뿐이라며 독려했다. 발표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 지 않는다. 보나마나 엉망이었겠지만 사람들은 부분을 잘못 알았다고는 티나지 않았다고 말해주 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사실이었어도 그럼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란 후회와 자기 불만족만 남았다.
책의 내용은 전혀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나보다. 책은 감정에 솔직해지라는데, 내가 좀 별로 인 사람이어도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절대 참을 수 없는 사람이다. 조금 별로면 좋은데 서 른이 되면서 어릴 적 상상해온 서른 살의 나와 많이 다른 내 모습은 꽤 별로다. 조금 별로 아니 고 꽤 많이 별로이다. 난 생각보다 마음이 넉넉하지도 못했고, 돈을 잘 벌지도 못했고 또 뭔가를 단단히 견뎌내지도 못한다. 무던하지 않고 예민하고, 너그럽지 못하고 사납다. 그러니까 포장할 수 밖에 없는 건데, 오늘 읽은 책의 작가가 한국인이 아닌 딴 나라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 다. 정말 먼 나라 우주 나라 얘기 같았다. 스무 살 이후 10년은 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이 따금 나를 무능력하고 만만하게 보게 한다는 교훈을 알려줬다. 또 다른 사람 앞에서 보이는 진실 된 눈물은 아주 높은 확률로 내 약점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마주할 시간들은 더 많고, 그 시간 속에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알아가겠지만 지금은 선택적 진솔함 혹은 페르소나로 감정을 많이 감추고 살아간다. 책은 이렇듯 삶의 방법과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배의 감각>, <자아, 예술가, 엄마>, <영화의 이해>. 모임이 끝난 후 스튜디오 안 책꽂이에 책을 꽂으려 고보니꽂혀진책들의제목에서현재나의소망이보였다. ‘부족한것을채우고,더나은내가 되면 좋겠다.’는 내 마음이 꽂혀있었다.
공교롭게도 오늘의 촬영 장소는 저 책을 산 어떤 목사님이 운영하는 남양주의 북카페이다. 목 사님들은 다 교회에 있을 줄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속된 말로는 투잡러, 좋은 말로는 일하는 목회자들이다. 처음엔 학생들에게 진로를 제시하기 위한 콘텐츠 촬영이었다. 이 목사님은 프리랜서 장례지도사를 하면서 아내와 함께 북카페를 운영한다. 지난 9월에 찾아와 목사님을 인 터뷰 했었는데,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실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중에 영상이 필 요하면 연락해달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마침 경기도의 지원을 받은 행사라 사업 보고용 영상 촬 영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셔서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행사는 말하자면 동네 플리마켓이었다. 남양주 별내 작은 동네 상점이 다 모여 시끌벅적했다. 특히 독서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 호스트처럼 자기들끼리 그림 그려주기 코너나 퀴즈, 작은 콘서 트를 한다. 오랜만에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니 촬영이 즐겁다. “아잇, 거기서 나오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여기서 찍고 있는데.” 정신을 안차리면 예찬이의 타격 없는 잔소리를 듣는다. 주말 촬영은 뭔가 더 루즈하다. 추가 촬영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열정이 잘 안생긴다. “예찬아 이거 까지만 찍고 다음 코너까지 카페나 다녀오자.” 촬영하고 있는 서재에도 커피를 판매하고 있지만 학교차로 멀리까지 나왔다는 보상심리에 다른 카페를 일부러 들려본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커피 맛을 모르던 나였는데 이젠 카페에 가면 자연스레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일본식 로스팅을 하는 카페로 들어가 생소한 이름의 커피를 시켰다. 다음 코너까지 남은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커피 를 두고 동행한 예찬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니 제법 주말같다고 느껴졌다.
다시 현장에 돌아오니 꼬맹이들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 앞으로 모여온다. “선생님은 어디서 왔어요? 우리 이거 들고 동네 한 바퀴 돌건데 같이 가요! 우리 따라와서 예쁘게 찍어주세 요, 네?” 처음 장소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내 키만한 삼각대와 카메라를 보고 놀란 듯 얼었었다. 자기들끼리 카메라를 흘깃거리면서 수군거리더니 이젠 우리에 대한 경계가 풀어졌나보 다. “그래! 예쁘게 찍어주는 건 자신 있는데, 대신 이따가 인터뷰도 해주고 포즈도 잡아줘야해 알 겠지?” 서로 윈윈인 것을 아는 것처럼 아이들은 신나게 자신들의 동선이나 계획을 알려줬다. 최근 에 다리가 다친 예찬이를 대신해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여러 각도로 찍다보니 크게 웃을 정도로 즐거워졌다. 아이들은 골목에 열려있는 상점에 들어가서 “우리 서재로 놀러오세요! 재미있 는거 저희들이 많이 합니다~ 놀러오세요!”라고 외쳤다. 어른들은 성가셔 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창 피해하지 않았다. 다시 플리마켓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카메라와도 친해져서 그 앞에서 연예인 흉내를 내며 춤도 추고 인터뷰도 했다. 조용하던 한 아이는 와서 직접 레코딩 버튼도 눌러보았다. 원래 광고업계에서는 아이들 촬영을 난이도가 어렵지만 성공 가능성이 높은 3B 중 하나로 뽑는 다. 3B는 아이(Baby), 미인(Beauty), 동물(Beast)이다. 이제는 고전으로 통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오 늘의 촬영물은 꽤 마음에 들고 나 또한 행복한 촬영이었다. 늘 이런 주말 작업은 프리랜서의 삶 을 기웃거리게 하지만 단편영화를 하며 수많은 촬영협조를 구하던 내게 “당신은 누구예요?”라고 물어오는 질문에 소속과 직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큰 안정감을 준다.
아이들과 친해진 덕분에 시간도 빨리 갔고, 촬영도 수월하게 끝이 났다. 큼직한 순서를 끝내고 사모님과 목사님의 기념 사진을 찍어드린 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와 데이터 백 업을 하며 창문 없는 스튜디오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흠... 이 공간에서 내가 또 얼마나 일할 수 있으려나.’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쉬워 바로 버스에 타지 않고 조금 더 걸었다. 주말까지 차오른 일 정들 속에서 무거워진 마음을 높아진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것으로 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