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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의 서른 Mar 13. 2023

[20대] 럼주가 든 초콜릿

허구의 1월

  20대를 돌이켜 본다는 건 나에겐 사실 불편했다. 30대가 되어서야 20대의 기억이 책장 속 오래된 앨범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은데, 다시 또 펼쳐서 봐야한다니. 그래도 언제까지고 기분 나쁜 앨범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기에 기뻤던 순간들이 찍힌 사진들을 보며 추억하고자 한다. 또한 안좋았던 순간들이 찍힌 사진들을 보며 그런 일들도 잘 보내고 이 자리에 있는 나에게 대견하다고 칭찬해주는 마음으로 한페이지씩 넘겨보려한다. 이렇게 적어보니 엄청난 일을 겪었고 그 일들을 극복해 더 큰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더 큰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이 나올 것만 같지만 그런건 아니다. 단지 20대엔 비바람을 잘 버텨냈기에 그때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음을 얘기하고 싶다.


  혹시 인생 드라마 있어요? 하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내 이름은 김삼순”. 시기적으로는 11살 때 나온 드라마인데 우연히 TV 재방송에서 틀어주는 것으로 보고나선 매력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십때를 보내면서도 밥을 먹거나, 심심할 때면 그냥 틀어놓는 밥친구 또는 백색소음용으로 하나로 무한도전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본 컨텐츠일 것 같다. 지금 다시봐도 그 시절 시대상은 이해할 수 없지만, 2005년에 나온 드라마이니 그건 어쩔 수 없지만 당시의 삼순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다. 


  나도 서른살이 되면 저렇게 멋있는 어른이 되어 있길 바랬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라는 특성탓에 남자주인공과의 스토리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외적으로 자신의 꿈이었던 직업을 갖기위해 열심히 달려온 모습들이 멋져보였다. 한 때 이 드라마를 보고 파티시에를 꿈꾸기도 했고, 제과제빵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당시 인문계로 진학을 원하시던 부모님께 말할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그 꿈을 한켠에 남겨둔 채 공부로 유명한 지역내 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생물’이라는 과목에 매력을 느꼈고 대학교 관련한 학과로 진학을 하게되었다. 생명공학과와 화학공학과가 통합된 이후 첫번째 해를 맞이하는 학생이었기에, 전공 필수과목들은 내가 좋아하던 생명공학 쪽 과목과 함께 화학공학도 배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수능 때에 선택한 세가지 과목이 ‘생물1’, ‘생물2’. ‘지구과학1’이었기에 ‘화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상태였어서 걱정이 되었었다. 그래도 백지상태가 무언가를 배울때에는 더 좋은 것 처럼, 기초부터 하나하나 배우다보니 화학에 또 매력을 느꼈다. 

특히  “적정기술”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의 1%만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책으로 부터 감명을 받았다. 적정 기술과 훌륭한 디자인이 합쳐진다면 세상을 더욱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내에 적정기술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생겨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가게되었고, 적정기술을 통해 현지의 일자리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기도 해보았다. 그러다가 한창 꿈과 강연에 관심이 있을 당시여서 강연과 관련된 동아리도 만들어보기도 했다. 당시 포부는 한국의 TED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대학교 선배들을 연사로 초빙하고, 사람들을 모은 후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학교 밖 사람들을 일찍이 초대한 탓이었을까? 학교 밖 현실이 조금 더 일찍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교수님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당시 당시에 과대를 하고 있어서 당연히 다음 수업에 관련한 전달 사항이라 생각했건만, 교수님은 연구실 생활을 제안했다.


  보통은 석사때부터 연구실에 들어가는게 일반적이지만, 박사과정이 적은 대학교 특성상  교수님들은 마음에 드는 학생들을 연구실로 초대했다. 어느 순간 그 학생들은 그 연구실에서 석사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도 어느순간부터 돈이 되는 기술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돈많이 벌어서 사회에 좋은 기술로 환원하자며 연구실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연구주제는 지금 한창 각광받고 있는 기술이었다. 두 교수님이 함께 운영하는 연구실인데다가 학과내에서도 가장 많은 학생연구원들이 있는 곳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연구실 생활을 할 때 다른 연구실 교수님들과 얘기 중 한 분이 나를 표현한 말이 있다. 

   허구는 참 Naive 하네?

당시에는 ‘Naive’ 라는 단어를 몰랐다. 대화당시 맥락으로는 연구실의 일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였기에 이게 칭찬인지 아님 좋지않다는 말인지 기분이 이상했다. 재차 물어볼 껄. 그게 뭔뜻인가요? 하고 물어볼껄. 문맥이 뭔지 아직도 생각이 잘 안나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알 것같다.

  “Naive” :  “순진해빠진, 순진한, 순진무구한, 천진난만한

사전적인 의미로는 위와 같다. 그렇다. 인정한다. 이제와서 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Naive 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교수님 사람 참 잘 파악했다. 


  순진했던 난 참 휘둘리기 쉬운 존재였었다.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는 세상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갑’과 ‘을’의 관계였다. 교수의 말은 거의 ‘어명’ 그 자체였다. 선배와 그들의 선배로부터 오랜 시간 만들어져온 왕국에 무지한 채로 입성한 존재는 한없이 나약했다. 연구실에 들어간 후로부터 난 교수님 눈에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았었다. 그래도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더 좋은 일들이 있겠지라며. 저자란에 내이름이 찍혀있는 논문들이 한편씩 나올 때마다 더 나은 미래들을 상상하고 위로했었다. 연구실 일이 아닌 개인적인 일들을 할 때에도,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폭언과 폭력을 당할때에도. 졸업을 몇일 앞두고 원하는 박사과정을 도전하기 직전이 가까워지자, 인내해야 할 것은 점차 더욱더 난이도가 높아졌다. 어느날 연구실 회식자리에서 교수는 갑자기 휴대폰화면을 내게 보여줬다. 화면 속 수신자는 내가 진학을 원하던 연구실의 교수님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당장이라도 나를 못가게 막을 수 있다며 협박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을 해야했을까. 당신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 었으며 내가 무엇을 가져다줘야 했던 것일까. 그날 밤 난 그동안 보내온 4년간의 연구실 생활을 그만두기로 했다. 


  인생을 잘 풀 수 있는 쉬운 길이라며, 동아줄이라며 잡은 곳은 사실 날 더 어렵게 하는 곳이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걸 제대로 배웠다. 연구실을 나온 후 1년여간을 잠시 마음을 달래며 보냈다. 학부생 부터 석사생활까지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보내왔던 4년여의 시간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자 마음이 힘들었다. 한없이 그 순간을 좀 더 버텼으면 좀 더 좋은 일들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날 갉아먹었다. 다행히 힘듦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기 직전 심리상담을 예약했다. 상담을 받을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잘못된 인식 속에 그 병원문을 들어가는 순간 내가 좋지 않은 상태인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행여 약에 의존하게 될까봐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난 이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 편견들은 잘못된 정보임이 확실했다. 상담을 통해서 나를 알아가고 앞으로 힘든 상황이 또 올때에도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해결할 수 없는 힘듦에, 그 버틸 힘이 도저히 없을 때 다시 또 찾아갈 수 있는 리틀포레스트 같은 곳으로 심리상담소를 찾을 것이다. 그 힘들때 잠시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됨을 배웠다.


  삼순의 이야기에서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이 있다.

 “초콜릿 상자에는 한사람의 인생이 담겨있거든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 보셨죠? 거기 보면, 주인공 엄마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이다. 네가 무엇을 집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가 무엇을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아주 많이요. (인생의 초콜릿 상자에)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그 상자는 제거고 어차피 제가 다 먹어야 하는 거니까요. 언제 어느 것을 먹느냐, 그 차이 뿐이겠죠. 그치만 예전과 지금은 다를꺼에요 아마. 어렸을때에는 겁도없이 아무거나 쑥쑥 집어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생각도 많이하고 주저주저하면서 고르겠죠. 어떤 건 쓴 럼주가 들어있다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바라는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초콜릿 상자에 더이상 쓴 럼주가 든게 없었으면 좋겠다. 30년동안 다 먹어치웠다. 그거에요.”

난 아쉽게도 처음엔 쓴 럼주가 든 초콜릿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지만, 어짜피 먹을 거 절반은 미리 다 먹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또 쓴 초콜릿을 집을 수도 있겠지만 그땐 쓴 초콜릿을 즐길 수 있는 입맛이 되어있을 거라 기대한다. 어느새 삼순의 나이가 되어있는 내가, 조금 더 단단하고 씩씩한 사람이 되었기를. Naive했던 어제 덕분에 지금의 더나은 내가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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