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 전용구역 불법주차, 아파트 준공연도에 따라 처벌 갈리는 현실
어제는 똑같이 불법주차였는데, 오늘은 내 차에만 50만 원 과태료가 붙었다. 더 기막힌 건, 바로 옆 단지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화재 시 생명을 좌우할 ‘소방차 전용구역’인데도, 아파트의 준공연도에 따라 과태료 부과 여부가 달라지는 현실. 법이 오히려 안전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3년 준공된 광주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는 지난해에만 소방차 전용구역 불법주차로 73건, 수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하지만 불과 몇 걸음 옆, 2018년 이전에 지어진 구축 아파트에서는 같은 행위에도 처벌이 전혀 없다.
이처럼 같은 불법주차인데도 아파트 ‘준공연도’라는 기준 하나로 처벌 여부가 갈리는 이 상황은, 2018년 개정된 소방기본법의 소급 적용 배제에서 비롯된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를 계기로 개정된 이 법은, 신축 건물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위반 시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2018년 이전 건축물은 예외다. 결과적으로 구축 아파트 85%는 여전히 제재를 받지 않는 ‘무법지대’에 남겨졌다.
법적으로는 소방차가 화재 시 불법주차 차량을 강제로 파손할 수 있는 ‘강제처분권’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장 소방관들은 이후 불거질 민원과 소송을 우려해, 법적으로 보장된 조치조차 쉽게 시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구축 아파트는 주차 자체가 위법이 아니기에, 차량 파손 시 법적 분쟁 가능성이 더 크다. 화재 대응의 ‘골든타임’이 법과 민원 사이에서 무력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소급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는 스프링클러처럼 대규모 공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황색 도색과 안내 문구 표기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은 예산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임에도, 법은 여전히 과거 건물들엔 눈을 감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 역시 “공익적 목적이 뚜렷할 경우 제한적 소급 적용은 헌법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화재 시 진입로 확보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노후 아파트일수록 도로 폭이 좁고 주차난이 심각해,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보완만큼이나,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도심 곳곳의 소화전 주변 5m 이내는 적색 노면으로 주정차 금지 구역임에도, 여전히 불법주차가 빈번히 목격된다. 소화전이나 소방차 전용구역을 막는 행위는 단순 불법이 아닌,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이기심’이다.
이럴 땐 행정안전부의 ‘안전신문고’ 앱을 활용해 간단히 신고할 수 있다. 동일 위치에서 1~5분 간격으로 사진 두 장만 찍어 올리면, 과태료 부과의 결정적 증거가 된다. 시민 한 사람의 참여가 이웃의 안전을 지키는 실질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
불법주차에 대한 과태료가 ‘아파트 건축연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이 오히려 차별의 근거가 되는 모순을 드러낸다. 신축 단지는 벌금을 내고, 구축 단지는 아무 제재 없이 방치되는 지금의 구조는 명백한 안전 사각지대다.
이제는 더 이상 법의 빈틈에 기대선 안 된다.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선 제도의 현실화와 시민의식 개선이 동시에 필요하다. 아파트의 연도가 아닌, 사람의 생명이 안전 기준이 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