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부터 고령운전자 대상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보급
“브레이크인 줄 알고 밟았는데…”
주차장이나 골목길에서 갑자기 돌진한 차량이 벽을 들이받고, 인도를 덮치는 사고. 뉴스에서 익숙해진 이 장면은 대부분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발생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더는 남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이 문제에, 정부가 마침내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보급 사업이 그 첫걸음이다.
2023년 한 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무려 39,614건. 전체 사고의 약 20%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2026년 예산안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보급’ 예산 5억 원을 처음으로 편성했다. 이는 단순히 면허 반납 권고 같은 소극적 조치를 넘어, 첨단 기술을 통한 적극적인 이동권 보완 정책으로 해석된다.
이른바 ‘에이지테크(Age-Tech)’ 기반의 교통안전 대책이 정부 정책에 처음으로 반영된 것으로, 기술이 고령자의 실수를 보완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 장치는 시속 15km 이하의 저속 주행 또는 정차 중일 때 운전자가 급가속을 시도하면, 이를 ‘오조작’으로 인식해 엔진 출력을 차단하거나 지연시킨다. 즉, 실수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차량이 급발진하지 않도록 제어해주는 장치다.
국내 보험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페달 오조작 사고의 약 26%는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 기술은 사고의 핵심 원인을 정면으로 겨냥한 현실적인 대응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장치 설치 비용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당 약 44만 원인 장치에 대해 50%에서 최대 80%까지 국비를 보조하며, 택시와 1.4톤 이하 소형 화물차를 운전하는 만 65세 이상 운수사업자가 1차 대상이다.
2026년에는 약 2,000대 수준으로 시작되며, 향후 확대 계획이 포함돼 있지만 전체 고령 운전자 수를 감안하면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일반 자가용 운전자는 이번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고령화에 먼저 직면한 일본은 이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일본 정부는 2019년부터 ‘서포트카’라 불리는 안전장비 장착 차량에 대해 최대 10만 엔(약 1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이후에는 아예 모든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며, 2028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이처럼 일본은 단순한 보급 지원을 넘어, 차량 제조 단계에서부터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화시키고 있다. 국내 역시 장기적으로는 신차 안전 기준에 해당 장치 장착을 포함하는 방식의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령 운전자 사고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안전과 직결된 사회적 과제다. 정부의 이번 예산 편성은 ‘사고 이후’가 아닌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하지만 제한적인 대상과 낮은 보급률로는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 향후 지원 대상을 자가용 고령 운전자까지 확대하고, 일본처럼 차량 제작 단계에서부터 안전장치를 반영하는 구조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기술이 사람의 실수를 보완하는 시대.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고령 운전자뿐 아니라, 도로 위 모든 이들을 지키는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