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같은 차인데"... 전기차 숫자에 감춰진 함정

CLTC, WLTP, EPA, 환경부… 전기차 주행거리는 왜 다를까?

by 오토스피어
ev-range-test-comparison-wltp-epa-cltc-korea1.jpg 전기차 주행거리 인증 방식 차이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기차를 알아보는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수치는 ‘1회 충전 주행거리’다. 하지만 같은 모델임에도 국가별로 수치가 200km 이상 차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전기차가 아니라, 이를 측정하는 각국의 ‘기준’이다. 겉으로는 같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다.


H3: 숫자의 함정, ‘측정 기준’이 주행거리를 바꾼다

ev-range-test-comparison-wltp-epa-cltc-korea2.jpg 주행거리 테스트를 진행 중인 아우디 e-tron 55 / 사진=환경부


전기차 주행거리는 실험실에서 표준화된 장비와 절차로 측정되며, 국가마다 사용하는 주행 사이클이 다르다. 중국의 CLTC는 극히 느린 속도와 정체 위주의 환경을 가정해 회생제동 효율을 극대화시켜 가장 긴 주행거리를 뽑아낸다. 테슬라 모델 Y가 CLTC 기준 688km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유럽의 WLTP는 도심과 교외를 섞어 비교적 현실적인 주행 조건을 구성하지만, 여전히 에어컨·히터 같은 실사용 조건은 빠져 있다. 결과적으로 테슬라 모델 Y는 WLTP 기준 533km로 측정된다.


H3: 가장 현실적인 건 미국과 한국의 인증

ev-range-test-comparison-wltp-epa-cltc-korea3.jpg BMW i7 / 사진=BMW


미국의 EPA는 실험 결과에 0.7이라는 보정 계수를 적용해 주행거리를 의도적으로 줄인다. 이는 실제 도로 환경에서의 효율 저하를 반영하기 위한 조치다. 한국은 이보다 한층 더 엄격한 5-Cycle 방식으로 측정하며, 급가속, 에어컨 사용, 혹한기 테스트까지 포함해 실제 환경에 가장 근접한 수치를 만든다.


그 결과 한국 환경부 기준으로 같은 테슬라 모델 Y는 468km. CLTC와 비교하면 무려 220km 가까운 차이다.


현실과 마케팅 사이, 왜곡되는 소비자 인식

ev-range-test-comparison-wltp-epa-cltc-korea4.jpg 기아 EV9 / 사진=기아


이처럼 국가별 인증 기준의 차이는 소비자의 선택에도 혼란을 불러온다. WLTP 기준으로 500km 이상을 자랑하며 국내에 출시된 수입 전기차는, 환경부 인증에서 400km 초반으로 급감해 소비자 불만을 자초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이오닉 5처럼 한국 기준으로 측정된 수치를 바탕으로 유럽에 수출된 차량은, 관대한 WLTP 기준을 적용받은 경쟁 모델과 비교돼 상대적으로 주행거리가 짧아 보이는 '역차별'을 겪는다. 이처럼 동일한 성능의 전기차라도 어디서 어떻게 측정됐느냐에 따라 시장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ev-range-test-comparison-wltp-epa-cltc-korea6.jpg 현대차 아이오닉 9 / 사진=현대자동차


전기차 카탈로그에 적힌 주행거리 수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각국의 도로 환경과 운전 습관, 기후 조건 등을 반영한 '상대적 지표'일 뿐이며, 그 수치를 그대로 믿는 것은 잘못된 판단을 부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의 운전 패턴과 환경에 맞는 기준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차량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가속을 자제하고 회생제동을 적극 활용하는 등 운전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공인 인증 주행거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짜 효율의 열쇠다.


전기차 시대, 숫자보다 똑똑한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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