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높낮이

가장 알맞은 높이의 말과 글

by autumn dew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주관하는 가족 캠프에 가게 되었다. 한 반에 한 가족 정도만 선발해 인근 캠핑장에 모여 1박 2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그것을 반에서 조용히 지내던 내가, 우리 가족이 신청하게 되었던 건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우리 가족이 여행을 좋아했고, 방학 때마다 꼬박 제출했던 현장견학 실습보고서에 내가 충실해서 그랬던 걸지도.


아무튼, 그 캠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족 캠프를 총괄하던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이 아닌 다른 반 선생님이셨는데, 학생들에게 참가 확인 차 집집마다 전화를 돌렸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엔 학생들에게 핸드폰이 대중화되기 이전이었기에 학교에선 학생의 집 전화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담당 선생님은 캠프 관련 안내사항 전달 차 우리 집에 전화를 하셨고, 마침 그 전화를 내가 받았다. 선생님은 거기 000 학생 집이 맞냐 물었고, 나는 맞다고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아, 그럼 네가 00이 오빠니?"



내 목소리가 저음이고 변성기였을 순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빠라니. 우리 집엔 오빠라는 사람을 키워 본 적이 없습니다만.


가끔 녹음해서 듣는 목소리가 듣기 싫긴 했어도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 남자 목소리로 들릴 줄은 몰랐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내심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티 내지 않고 정정해야 했으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뇨. 제가 00인데요."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 통화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나의 대답에 적잖이 당황하셨던 것은 기억한다.




그 어린 날의 목소리가 자라며 크게 바뀌지는 않아 나는 늘 저음의 목소리를 유지하며 지냈다. 입사 초반에 어떤 여자 선배가 목소리 톤을 좀 높이는 게 어떠냐는 훈수까지 두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학교의 대표번호까지 내 구내 전화번호로 쓰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저음이라는 이유로 일하면서 문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내가 이다지도 저음의 목소리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은, 언젠가 한 번 민원인과 통화를 한 뒤 그 민원인이 나에게 무엇이 그렇게 고마웠는지 나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로 남겼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내 목소리를 차분하고 신뢰감이 가는 목소리라고 언급했다. 사소한 그녀의 한 마디 덕분에, 목소리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그때부터 나는 내 목소리가 나쁘지 않다고 여기게 되었다. 내 목소리에 익숙한 사람이 아닌 내 목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이 해준 말이니까.


그러나 내가 저음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도 목소리가 큰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였는지 살면서 한 번도 클럽이란 곳을 가본 적이 없고, 카페에도 잔잔한 음악이 아니라 다소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면 최대한 조용한 자리에 가 앉거나 들어가기를 꺼려하기도 했다. TV 볼륨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까지 최대한으로 줄였는데 그러다 보니 가끔씩 드라마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곤 했거늘, 요즘엔 ott나 하물며 공중파 드라마에서도 자막을 깔아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 핸드폰은 늘 진동모드였다. 스스로를 놀라게 하기도,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들기도 싫어서.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늘 진동모드. 그러다 문득 내 핸드폰 벨소리가 무엇이었나 싶어 풀어보니, 한때 내가 좋아했던 어느 노래의 시작 부분이었다. 역시나 소란스럽지 않은.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해야 하는 4박 5일간의 실지감사 출장에서 코감기를 얻어 출장 기간 내내 코막힘과 두통을 안고 지냈다. 약국 약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나른한 오후 시간엔 가끔 졸음이 밀려오기도 했다. 마침내 일정을 마무리하고 출장지에서 인천까지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운전해 돌아가야 하는 길. 가뜩이나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이 빨갛고 노란 것을 보니 고속도로가 꽤나 밀리는 듯한데, 코맹맹이고 뭐고 졸음을 막기 위해 일부러 차 안에서 온갖 음악을 평소보다 크게 틀어놓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비음 가득한 목소리로 한 시간의 셀프 진동 모드 해제.


그렇게 한참을 차에서 열창을 하며 무사히 인천으로 돌아왔고, 오자마자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다. 지금은 훨씬 나아진 걸 보니, 병원에 다녀오길 잘한 것 같으면서도 오래간만에 누가 뭐라 듣든 코가 막힌 목소리로 노랠 크게 불렀던 그 시간이, 엄숙하고 진지해야만 했던 출장의 무게를 털어내는데 조금 일조한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내 차야말로, 내가 홀로 있는 공간 중 가장 떠들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진동해제가 가능한 공간. 저음의 목소리로 조용조용히 지내고 있지만 이렇게 가끔씩 진동 모드를 해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시금 주변의 눈치를 보며 무난한 사회인으로 지내야 하는 곳으로 돌아왔고, 늘 그랬듯 기본값인 진동 모드로 살아가겠지만 괜찮다. 이곳에 털어놓고 있는 나의 이야기만큼은 진동 모드가 아니니.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저음의 목소리보다도 더 잔잔한 이 활자들이. 그러나 목소리의 톤처럼 글에도 색깔이 있을 테니, 이것이 어느 정도의 높낮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또한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높낮이를 유지하며 이곳에서만큼은 엄숙해야만 하는 진동모드를 해제하려고 한다. 이렇게 글로써 털어놓는 이야기가, 말로써 털어놓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나다운 목소리니까.




그러고 보니, 감사실로 발령나 떠나오기 전 이전 근무지의 교직원들에게 송별 인사를 담은 메일을 보내며 나는 말미에 그런 말을 덧붙였었다. 감사실과 어울리는 것이라곤 저음의 목소리뿐이지만, 가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그렇게 따지면 지금 나는 내 톤이 어색하지 않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어릴 때부터 유지해 온 저음의 목소리와, 말보다 글을 좋아했던 삶의 톤을 유지하며 살아가다 가끔씩 그 진동을 해제하며 나다운 소란스러움으로 스스로를 마주한다.


그렇게 또, 여기,

나다운 톤으로 이렇게 목소리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