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의 딸이 기록한,
나는 사실 그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정말 엄마 친구 아들이며, 동시에 사기캐릭터를 뜻하는 진짜 엄친아다. (엄친아: 능력이나 외모, 성격, 집안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를 빗대어 이르는 말. ‘엄마 친구 아들’의 준말로, 부모가 자식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때 으레 친구의 자식을 언급하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출처: 고려대 한국어사전)
그런 엄친아의 결혼식은 그가 졸업한 서울대에서, 같은 서울대를 졸업한 여성과 함께, 서울대에서 거행되었다.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야 한다.'는 논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런 연유로 그의 결혼생활도 무탈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러나저러나 덕분에, 살며 처음 가본 서울대. 엄친아 덕분에 아니, 엄친아를 자식으로 둔 사람을 친구로 둔, 우리 엄마 덕분에 이런 구경도 해보는군.
엄친아의 엄마라고 해서 엄마의 친구분은 '헬리콥터맘'처럼 아들의 성적과 성공에 크게 연연하진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짜 '엄친아'로 잘 성장했는데, 그는 나보다 조금 어리기도 한 데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었기에, 다행히 학창 시절 동안 나와 비교대상이 되지 않았다. 역시나 엄마도 그런 그를 나와 비교하지 않았고, 나 또한 하등의 열등감을 느껴본 적 없었다. 단지, 그저 엄마의 입을 통해 종종 그의 삶을 전해 들으며 그 근황을 갱신하고 있었을 뿐. 그런 그가 결혼을 서울에서 한다고 하니, 먼 여정에 긴장하고 있던 엄마를 위해 나름 이제 막 수도권 생활 2년 차를 시작한 내가 엄마의 일일 하객동행이 되어 험지에서 엄마를 지켜주기로(?) 했다.
설 연휴 이후 감기에 심하게 걸려 골골대던 엄마는 멀리서 열리는 절친의 아들 결혼식에 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그때부터 반강제적인 칩거 생활을 하며 몸을 아끼고 있었다. 마침내 식장에 도착해 혼주가 된 친구와 마주한 엄마는 잠시 울컥한 듯한 모습이었다. 동생의 결혼식에서 이미 혼주의 자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주가 된 친구를 보는 것은 조금 다른 느낌인 듯했다.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되었고 다른 하객들이 신랑, 신부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엄마는 화촉 점화를 하러 가는 친구의 모습에 집중해 있었다.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친구를 찍어보겠다고 떨리는 손으로 초점이 잘 맞지 않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터치해 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내심 귀여웠다.
똑쟁이들의 결혼식은 다른 점이 있을까 했지만 별다르게 큰 차이점은 없었고 기억에 남는 것은 장난기 없이 그들이 읊었던 서약문이었는데, 글에는 당연하지만 서로를 향한 정돈된 단어와 차분한 다짐이 담겨 있었다.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웬만해서 다른 결혼식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데, 이번 결혼식에서 그들의 서약문을 듣고서 다른 어느 것보다 언어의 온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조금 부러웠다.
사실 엄마는 결혼식에 가는 동안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얼마 전 아들의 결혼식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는 친구에게 장문의 톡을 보냈다고 했다. 그동안 이렇게나 멋지고 대단한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다른 사람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 서로의 공은 알아주자고.
엄마의 친구분은 그런 엄마의 톡을 받고 꽤나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결혼식장에 들어서서 그런지, 나는 결혼식을 바라보는 내내 비슷한 또래의 신랑, 신부의 하객들보다는 엄마와 엄마의 친구분에게 몰입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 수많은 결혼식에서 단 한 번도 혼주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식을 바라본 적이 없었거늘. 친구의 결혼, 친한 선후배의 결혼. 늘 주인공들의 입장에서만 있어보았지, 어린 시절 늘 엄마를 통해 들어왔던 어느 멋진 남자아이를 키운 어느 어머니의 입장에서 결혼식을 바라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엄친아의 결혼식에서 '엄'자가 빠진 '친아',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군. 언젠가 나도 내 친구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면,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단순히 길어야 1~20년 정도를 알고 지낸 지인의 결혼식이 아닌, 3~40년을 함께 살아온 내 삶의 동료가 키워낸 장성한 아이의 결혼식. 엄마의 울컥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연회장에서 식사를 하며 만난 엄마의 친구분을 향해 나는 아낌없는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엄마의 친구로서, 내가 자라온 시간만큼이나 엄마와 함께 자식의 무사안일을 함께 공유했던 누군가에게 이 일은 주인공 못지않게 대단한 터닝포인트였을테니.
결혼식 내내 내 옆에는, 신랑 측 하객으로 온 어느 젊은 부부와 어린 여자아이가 자리했다. 식이 시작되기 전, 아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결혼식 언제 해?"
아이는 아마도 자리에 앉은 지가 꽤 되었지만 아직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결혼식이 언제 시작할지를 물어본 듯했다. 그러나 그의 아빠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다.
"결혼은 네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그때 하면 돼."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답변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보다는 결혼하기 위해 사랑을 노력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그날따라 그의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게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이러한데, 과연 이 아이가 살아갈 시대엔 과연 어떤 형태의 조건이 사랑을 앞서고 있을까. 지금보다 훨씬 삭막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옆의 한 아버지도 언젠가 지금의 이 모습이 흔한 식전 영상 속 신랑 신부의 어린 시절 속 한 장면이 되어, 그 영상과 함께 어느 아름다운 신부의 혼주로 자리할 텐데. 다른 것보다 그날의 신부가 오늘의 아버지가 했던 이 말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엄친아 덕분에 결혼식이 끝나고 나는 오랜만에 엄마와 즐겁게 1박 2일 데이트를 했다. 역시 엄친아는 결혼식을 통해 얻는 후일담과 그 뒷 일정들도 남다르군. 서로 잘 알지 못한 채 자랐지만, 나 또한 성장과정에 있어 그의 어머니로부터 아낌없는 응원을 건네받았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의 국면을 맞이한 엄마의 친구, 그녀의 새로운 시작 또한.
비록 나는 그에게 '엄친딸'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서로의 성장을 함께 듣고자란 '엄마 친구 딸'로서 이 정도 응원과 축복은 가능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