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껴입되, 마음은 비우며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나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그러나 올해 겨울은 유난히 몸서리치게 춥다. 언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더니, 이젠 지구온난화로 인해 겨울이 더 추워졌다고 한다. 적당한 추위란 어느 정도일까. 몇 년 전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포근했을 때, 이어 맞이한 봄에 각종 해충들이 들끓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춥지 않은 겨울이라 좋아했는데, 겨울답지 않은 겨울의 여파는 그다음 계절에 있었다.
"겨울답게 추울 만큼 추워야 지금 죽어야 할 것, 없어져야 할 것들이 사라져. 그래야만 해."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인들과 길에서 연신 "춥다"를 내뱉고 있을 때, 나는 그렇게 냉정히 말하곤 했다. 당장의 무난함에 만족하고 있는 동안 계절의 흐름에 알맞게 사라져야 하는 것들이 제때 소멸되지 않으면 그건 뒤늦게 탈이 나니깐. 그래서 몸서리치게 추울 때, 그 말을 내뱉으며 생각한다. 지금은 무엇이 죽고 있는 중일까. 무엇을 위해 지금 이토록 시린 걸까.
10년이 조금 넘는 직장생활을 하며, 주기적으로 연락을 드리는 선배들이 있다. 물론 존경하는 선배들은 다수이지만, 그들 중에서도 유난히 애틋한 이들이 있다. 가만히 이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니 그들은 모두 발령, 인사이동으로 인해 새로이 낯선 곳에 떨어진 직후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여기는 어디이며 지금 무얼 해야 하는지 헤매고 있을 때, 내 이마에 [I'm a stranger]라고 떡하니 쓰여 있을 때 만난 이들. 그런 stranger인 나를 strange하게 보이지 않도록 도와줬던 사람들. 지금까지 주기적인 전보와 발령으로 수많은 이들과 새로이 만났고 아쉽게 헤어졌지만, 항상 그들과의 이별은 유독 슬펐다. 그래서 나는 늘 그들과 이별할 때 눈물을 쏟아냈다.
다른 이들의 눈에 그저 원하는 것을 관철하기 위해, 또는 감정에 호소하고자 하는 무기로 보일까 싶어 회사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그래서 사회초년생 때엔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가 혼자 해결하고 돌아오곤 했다. 이젠 웬만한 일에 눈물 날 일이 없고, 혹 분노가 차올라서 눈물이 될 때가 있는데 그때는 꾹 아껴뒀다 집에 가서 욕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새로이 낯선 곳에 떨어져 첫 정을 붙였던 이들과 이별할 때만큼은 아직도 눈물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그 눈물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지 않나. 당신과 함께 했던 순간이 그만큼 애틋하다는 의미이거늘.
이제 대구를 떠나 인천으로 떠나온 지 만으로 1년을 채웠고, 동시에 이곳에 온 뒤 쭉 의지했던 선배를 처음 전보로 떠나보냈다. 역시나 잘 참아왔던 눈물을 이번에도 참지 못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매번 왜 이렇게 슬픈지. 처음 겪어보는 온도의 낯설고 시린 겨울을 함께 났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그렇게 낯설고 추웠던 직장생활의 겨울마다 늘 누군가와 이별하며 무언가 하나씩 사라졌고, 이제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지금 당장의 살을 파고드는, 낯선 추위를 벗어나고 싶었던, 그렇게 조금은 숨고도 싶었던 '의존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들과의 이별 이후, 나는 조금 더 자라났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벗어던지고 겨울의 끝을 보낸다. 겨울다운 겨울을 보냈으니 봄은 거슬림 없이 조금 더 수월하기를 바라면서. 그래야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시간과, 홀로 보내는 혹독한 겨울의 끝이 진정 의미가 있어질 테니.
겨울이 서글픈 것 중 하나는 캄캄한 새벽과 어두운 아침이다. 그러나 요 며칠 이른 출근을 하며 어둑한 아침에도 사소한 장점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현관문을 나서며 뒤를 돌아볼 때, 어디 하나 불필요한 전등이 켜진 곳이 있진 않은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 혹독한 시간이 어두움 속에서 불필요한 것을 직시하게 하고, 사라져야 할 것을 사라지게 한다. 그렇게 캄캄한 방을 향해 "갔다 올게."하고 인사를 한다. 어두울 때 나가 어두울 때 돌아오는 겨울.
서글프고 시리지만 그 시간이 비워내고 있는 것 덕분에 다음 계절에 채워질 무언가가 있다. 마침 다음 주부터 날씨가 좀 풀린다고 한다. 봄을 제대로 맞으려면 이 계절이 주는 상실의 미션을 잘 완수해야지. 옷은 껴입되, 마음은 비운다.
사택으로 이사 오는 동안 우당탕탕 부주의한 주인 때문에 꺾이고 넘어지며 몸살을 앓았던 나의 화분들. 여기저기 앙상해진 것이 이러다 죽으면 어쩌나 했거늘, 다행히 얼마 전부터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애써 비워낸 자리에, 이내 채워질 것들이 채워진다. 더디지만 봄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