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 불편한 세상으로

이불 밖은 불편해

by autumn dew

연휴의 끝이었던 금요일마저 연차를 쓴 탓에, 일주일 넘게 본분을 잊으며 살았다. 내가 누구였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잊은 것처럼. 처음엔 익숙지 않았던 늦잠도 며칠이 지나니 어느새 기상시간은 근무시간 무렵이었고, 화장하는 법도 잊은 듯 순수(?)한 얼굴로 몇 날 며칠을 보냈다. 그렇게 큰 불편함이 없던 시간이 어느새 끝이 나고, 다시금 먼 길을 떠나 불편한 시간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예전에 서울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 중 하나가 좀처럼 대구로 내려오지 않았었는데, 그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대구에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향수병 같은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래서 그 후유증이 힘들어 집에 내려오는 일이 꺼려진다며. 당시에는 그 말을 오롯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익숙해진 리듬을 벗어나 새로운 리듬에 다시금 적응해야 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긴 연휴 기간, 집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먹어라"였다. 엄마는 '냉장고를 부탁해'에 셰프로 출연한 것마냥 끼니때마다 냉장고를 털어 음식을 만들어줬다. 종류가 다양해서 하나하나 다 맛보기에 위 용량이 부족한 때도 있었다. 그렇게 영양사처럼 일한 엄마는 연휴의 끝, 감기몸살로 앓아눕고 말았다. 체력대비 정성과잉.



인천에 있는 동안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은 밖으로 나가곤 했다. 기숙사에 있을 때에도, 사택으로 이사 온 뒤에도 아직 냉장고를 들이지 않았기에 주말을 그곳에서 보낼 때면, 하루에 한 번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배달 음식은 편하긴 해도, 기본 주문금액이 만만치 않은 데다 그 많은 음식을 혼자 다 먹을 수도 없고, 더군다나 일회용기가 나오는 것도 음식물 쓰레기가 생겨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불편해도 하루에 한 번은 나가 홀로 외식을 하고, 요깃거리로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간편식을 사서 돌아오곤 했다. 굳이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당장은 불편해도 결과적으론 불편하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사택으로, 한 번의 이사를 겪고 나니 살며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아 졌다. 편리한 물건을 살 금전적인 여유와 별개로 나는 조금 불편해도 가볍게 살고 싶어졌다. 한 번 더 몸을 쓰고, 두 번 더 반복하더라도 나는 요즘 굳이 불편을 택하는 편이다. 유튜브에서 자주 꼭 사야 하는, 필수템, 후회하지 않는 몇 가지 아이템을 주구장창 소개하지만 크게 현혹되지 않는다. 내 이사 소식을 들은 이들은 "이것도 하나 장만해 봐.", "저것도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하지만 무언가 사고픈 마음이 들 때마다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일주일 정도 틈틈이 고민을 한다. 꼭 필요하겠다 싶은 것들만 삼고초려(?) 끝에 구매하는데, 장바구니에 담아 둔 사이 품절이 되면 '이 또한 운명이군.'하고 미련 없이 삭제한다.




원하는 것을 너무나 쉽게 득하는 세상. 그런 것들이 없었을 때에도 누군가는 살아왔을 텐데, 알기 전에는 불편함을 모르고 지내왔던 것들이 발명왕과 발견왕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너무나 쉽게 도태된다. 편리해지면 그 사이 더 생겨버린 시간만큼 세상이 더 많은 걸 요구하는 걸 모르나. 일 처리가 빨라질수록, 편리해진 만큼 그 여유를 가만둘 수 없는 이들이 또 다른 일들을 만들어 낸 것처럼. 그러니 나는 굳이 불편함으로써, 굳이 하던 일들의 가치를 이어가고 싶다. 굳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고, 굳이 하나를 덜 사고 두 번을 움직이는 것처럼. 또 이렇게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해 굳이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며 굳이 삶의 방점을 찍어나가는 것처럼. 가뜩이나 점점 머릿속 용량에도 한계가 있는데, 발명왕과 발견왕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눈과 귀를 멀리하려 한다.



아주 오래전, 대학생 시절 가세가 살짝 기울었던 때에 아빠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우리에게 불편할 뿐이지, 불행한 것은 아냐." 가장의 책임감으로 힘들어 보였던 아빠에게 응원의 문자를 보냈을 때, 아빠는 그렇게 답장을 보내왔다. 아빠는 불편과 불행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불편한 것이 결과적으로 불쾌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행이 아니다. 연휴기간 내내 몸을 사리지 않았던 엄마의 불편도, 가족들의 행복한 입꼬리와 표정으로 봐선 그녀에게 전혀 불쾌한 일이 아니었다.


몸을 일으켜 다시금 기차에 올라탔다. 원래의 리듬에 몸을 맞추는 것이 불편한 것이지, 불쾌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불행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다시, 이불 밖을 나와 불편의 세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