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이유

잡기 반사 말고, 놓기 반사를 해야 할 때

by autumn dew

사택으로 이사 온 지도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다행히 기숙사에 지내는 동안에 기숙사에 구비된 가구를 사용했었기에 사택으로 이사를 할 때엔 큰 짐을 옮길 게 없었고 덕분에 혼자서도 이사가 가능했다. 그러나 몇 번에 나눠하는 이사도 혼자해야 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이사용품이라곤 기껏 해야 장보기용 폴딩 카트 하나가 전부였는데 오래된 아파트여서 계단도 많고 엘리베이터도 좁아 모든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다.


혼자 끙끙대면서 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사를 하는 동안 참 많이, 그리고 자주 물건들을 넘어뜨리거나 흘리곤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는 데다가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재빨리 수습을 할 수도 없었다. 특히나 내 차 조수석에 실어 놓은 화분이 차가 급정거를 하다 뿌리째 뽑히면서 흙과 함께 차 바닥에 쏟아졌을 때는,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재빨리 수습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한동안 한숨만 쉬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무엇 하나 꼼꼼하지 못할까. 혼자여도 야무지게 해내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런 것까지 말썽인가.


뭐든 한 번만에 해낸 것이 크게 없었다. 쏟아진 화분은 빨간 목장갑을 끼고 다시 흙을 주워 담아야 했고, 아파트에서 청소기를 갖고 내려와 차 바닥도 청소해야 했다. 몇 번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박스는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폴딩 카트는 잘 나가다 꼭 한 번씩 돌부리에 걸려 맨 위에 있던 짐이 떨어져 나가곤 했다. 짜증 난다는 말조차 할 힘이 없어 한숨만 쉬며 이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 요즘 들어 물건을 자주 흘리거나 떨어뜨린다. 핸드폰을 자꾸만 떨어뜨려 방탄유리 액정은 붙인 지 얼마 안돼 다시 갈아야 했고, 식당 안에서 고이 벗어둔 외투는 꼭 다시 입다가 주머니에 있는 물건이 떨어지고 그걸 주변 사람이 주워주기도 했다.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주머니인데, 주머니에 있는 물건까지 떨어뜨리면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날인데, 교통카드를 놔두고 나와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고 올라간 적도 있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사소한 자괴감에 빠지지만 그 또한 그때뿐이고, 여전히 이런 일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힘을 주고 애를 써서 다닌다고 다니는데도, 무언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 예전 같지 않다. 그러다 며칠 전, 요즘 수영을 배운다는 후배가 그런 말을 했다. 자기는 힘을 뺀다고 빼는데, 강사가 자꾸만 힘을 빼라고 한다고. 힘을 어떻게 빼야 할지 모르겠다고. 수영을 배워본 적도 없지만 그녀의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추운 겨울 나는 늘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웅크리며 걷는 편이었고, 그럴 때마다 뒤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는 늘 힘을 빼라고 했다. 하지만 추워서 절로 움츠러든 것뿐, 힘을 뺀다는 것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나 또한 몸으로 구현해내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움츠러드는 건데, 오히려 힘을 뺀다는 것이 나에겐 더 억지 같았다.


열심히 사소한 것들을 꽉 쥐고 다닌다 생각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무언가 더 쏟거나 흘렸다. 적당히 쥐는 법을 몰라서. 그리고 애를 쓴다는 것이 머리와 몸이 이해하는 바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이제 욕심을 내면, 적당히 챙길 수 있긴커녕 그러다 전부를 흘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최근 우연히 직장생활을 버거워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안 힘들어 본 사람이 있겠냐만은, 그만큼이나 '힘을 내라', '아프지 마라'는 말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그녀에게 톡을 보내며, 나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 애쓰지 말자고.


'힘을 내라'는 말도, 이처럼 말하는 이를 무책임하게 만드는 말이 없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힘든데 무언가를 하라는 건 힘드니,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아프지 말라'는 말도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당사자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일인 것 같고. 그렇게 끝내 안 할 수 있는 것은 애쓰지 않는 것 밖에 없어 보였다. 예전만큼, 노력한 만큼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애를 쓰는데 그렇게 어깨 가득 들어간 힘에 우리는 종종 넘어졌으니까.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 애를 써서 이루어지고 만나져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어떡해, 갖고 있는 걸 더 흘리면 어떡해.


자꾸 흘리는 것도, 가끔 쏟기까지 하는 것도 다 이제 내 손아귀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음을. 만약 마음아귀라는 것도 있다면, 이제 그 또한 마찬가지지 않을까. 그렇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나씩 욕심을 품던 나이에서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나이로 넘어가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거부감 없이 수긍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꽉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풀고 기대에 없던 우연이 가져다주는 평온함과 조우하며, 가급적 애쓰지 않으려 한다. 아니, 그렇다고 또 애쓰지 않는 것을 애쓰게 되면 안 되겠지만.




자그마한 아기들의 양손이 뿜어내는 잡기반사의 힘이 생각난다. 저렇게 작은 아기들한테 어디서 저런 힘이 생겨날까. 그렇게 손아귀의 힘만으로도 몸 전체를 들썩일 수 있었던 한 사람이, 자라며 그 손아귀에서 낼 수 있는 힘이 점점 약해져 간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당연한 수순이다. 이미 내 몸은 알고 있었을 텐데, 머리가 자꾸 애를 써서 괜히 여기저기 고되고 괴로웠던 것이겠지. 잡기 반사를 시전 하던 아기들도 그 힘은 자기 의지와 관계가 없었을 텐데, 그래서 놓기 반사도 자기 의지를 이기지 못하는 걸까. 그러니 그나마 할 수 있는 대안으로 쥐고 있던 것에서 하나씩만 더 놓아보기로 한다. 하나 더 쥐지 말고, 하나 더 놓는 걸로.


내 인생의 바이블이라 생각하는 책은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이고, 그중 가장 애정하는 구절은 책의 옮긴이인 류시화 시인이 남긴 문장이다.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애정하던 문장인데, 애쓰며 사느라 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