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몰입
인생에서 가장 남초환경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0명 정도 되는 우리 부서에서 지금 나는 혼자 여성이고 게다가 홀로 30대다. 감사실의 특성상 출장과 외부 숙박이 잦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점에서 이곳은 그런 조건에 조금 무던한 남성직원을 선호하는 편이다.
장기출장을 떠나 선배들과 숙소에 가 숙박비를 결제를 할 때면(당연히 1인 1실입니다만), 가끔 몇몇 사장님들이 "아가씨, 혼자 여자예요? 힘들겠다." 하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이런 근무환경이 불편하지 않냐고, 외롭지 않냐고 묻지만 실상은 그런 생각이 들 겨를이 없을 정도로 다들 나를 막냇동생처럼 챙겨주고 있어서, 오히려 그런 질문에 '가끔은 정말 외롭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내가 중년의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찍소리 못한 채 숨죽여 살진 않을까 싶지만, 다행히 나도 이제 꽤나 적지 않은 연차라 참지 않고 선배들에게 적당히 할 말은 한다. (생각해 보니 적당히가 아니고, 그냥 다 하는 것 같기도.) 상부상조라고, 나도 선배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이젠 그들도 내 손길이 적잖이 필요하거든. 그러나 이런 어린 후배의 읍소에도 그들은 껄껄껄 웃으며 타격감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반응에 답답해 하기보단, '옳다구나'하고 나도 한 번 더 용기를 내 타격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타격감이 없구나.
이전 근무지에선 어린 후배들과 일할 때가 많았는데, 나이도 연차도 그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그들과 일하며 나의 신입 때와 비교해 느꼈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이 연장자와의 대화에서 대화의 공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성격상 연장자와 대화할 때에 대화의 공백이 생기면 가급적 어떻게든 대화 주제를 찾아 질문을 드리고 또 스스로에게 역질문을 하며 답을 하곤 했었는데, 내가 만났던 요즘 친구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른들이 질문을 하고 말을 걸어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편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는 것을 꺼려하는 듯 보였다. 그렇다 보니, 그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대화의 주도권은 주로 선배에게 있었다. 그 선배가 가끔은 나였고. 여기서 누가 옳고 그르다 말할 순 없을 테지만, 한편으론 그들을 통해 내가 여태껏 선배들과의 대화에 있어 그 공백에 대한 책임감을 꽤나 많이 느끼고 있었다는 걸 역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와 이렇게 자리 잡은 성격을 어찌해 보겠다는 것은 아니고, 다시금 막내가 되어 연장자들과 근무하며 이곳에 익숙해지다 보니 언젠가 다시 후배들과 근무하게 되면 그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워낙 이 분위기와 이 역할에 익숙해져 버려서. 뜨는 해의 두근거림과 설렘보다, 정오를 지나 조금은 그 기세가 기울어진 볕에 더 친밀감을 느낀다. 잔여 재직기간이 나에 비할 수 없이 짧은 그들. 이렇게 표현한 걸, 선배들이 알면 슬퍼하시려나. 하지만 슬퍼마세요. 저도 이제 막 정오를 지나고 있으니까요.
얼마 전, 오후 늦게 택시를 탈 일이 있어 택시를 탔다.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기사님과 또 열심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시간에서도 대화의 공백에 쓸데없이 책임감을 느낀 건지. 대부분 그 연배의 어른들이 그러하듯, 기사님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자랑에 가까운 자식이야기를 술술 늘어놓으셨고 자식 칭찬 싫어하는 부모님은 없을 테니 나는 또 열심히 맞장구를 치며 그의 자녀들을 추켜세워 주었다. 그 무렵, 기사님의 왼편 창에서는 해가 지고 있었는데 뜨거운 일몰의 볕을 가리려 기사님은 햇빛 가리개를 끼우셨다.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그거 알아요? 뜨는 해보다 지는 해가 더 뜨거워. 가만있으면 얼굴이 막 그을린다니까."
그는 오랜 시간을 하루 종일 운전을 하고 돌아다니다 볕을 쬐며 느꼈는데, 뜨는 해보다 지는 해의 볕이 더 뜨겁다고 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바깥에 있는 분이 하신 말씀이니 틀린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러다 이번 주중의 어느 날,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선배들과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서로 웃기려고 불쑥 치고 들어오는 시답잖은 아재 개그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워 다시금 그들을 떠올리며 혼자 한참을 웃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아,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그들의 볕에 꽤 많이 그을렸다는 것을. 지는 볕이 더 뜨겁다고 하더니, 기사님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그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는 이가 나라는 것. 지금껏 여러 어른들과 함께하며 많은 이들을 전보로 끝내는 정년퇴직으로 떠나보냈다. 누군가는 앞으로 더 오래 함께 일할 후배들에게 정을 쏟는 게 맞지 않냐 말하겠지만, 요즘 들어서는 함께 할 시간이 비교적 적은 이들에게 짧은 시간의 아쉬움만큼이나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남겨주고 싶어진다.
모두가 나보다 먼저 떠나갈, 먼저 질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충분히 그슬려 두었다가, 나 또한 어느 어린 이에게 그럴 만한 볕이 될 수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욕심일 수도. 아무튼 좀 덜 그을리려 최근엔 칼퇴도 하고, 선을 그으며 햇빛 가리개를 친다고 쳤는데도 잘 안 됐나 보군.
다음 주엔 멀지 않은 곳에 장기출장을 떠난 선배들을 응원한다는 명목으로, 하루 정도 퇴근 이후 출장지 근처에서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 행사를 '위문열차'로 표현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젠 자처해서 얼굴을 들이미는군. 이렇게 그을리다 너무 까매져서 못생겨지면 나중에 후배들이 싫어할 텐데.
어쩔 수 없다.
일몰은 일출보다 덜 눈부시니
가급적 오래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