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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Oct 27. 2024

알 수 없고 싶어요

손해 봐도 괜찮아서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 중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으로 종합 입시학원을 다녔다. 천방지축 초딩 생활을 청산하고 갑작스레 들어가게 된 입시학원은 하교 이후의 시간을 몹시 고달프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불편한 교복과, '어린이'라기보다는 '청소년'에 가까워진 조금 더 의젓해야 하는 압박감도 불편했는데 학교를 벗어난 시간마저 자유롭지 못하다니. 그래도 학원에 다닌 덕분에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잠시 방황했던 성적을 제대로 된 궤도에 올려놓았고, 가끔은 학원 친구들과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사 먹거나 학원 선생님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일이 즐겁기도 했다. 그러나 숨 쉴 곳 하나 없는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삶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고, 무슨 배짱이었는지 2학년부터는 혼자 공부하겠다고 부모님께 선포한 뒤 나는 쿨하게 입시학원을 관뒀다.


그렇게 2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 방학, 과목별로 참고서를 사야겠다며 엄마와 동성로에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어떤 참고서가 좋은 참고서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표지와 구성이 마음에 드는 것 위주로 과목별로 한 권씩을 열심히 골랐다. 그리고 그 무거운 참고서들을 사서, 비닐봉지 한쪽씩을 엄마와 나눠 들 다시 한참 동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시작된 나 홀로 '예비 중2반' 수업. 역시나 감독관이 없으니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결국 제대로 예습하지 못하고 개학을 맞이해야 했고, 수업을 들으면서 미리 사두었던 참고서를 볼 때마다 그제야 내가 제대로 된 참고서를 고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수업 시간에 본 적 없는 시험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이 포함돼 있거나, 중요한 부분들은 단순하게 나와있다거나. 비싼 돈 주고 사서 무겁게 집까지 들고 왔는데, 생각보다 내 안목이 높지 않다는 것에 실망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와중에 다른 친구들보다 빈약한 무기를 가졌다는 사실에 불안해하며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면서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친구들이 활용하는 참고서를 종종 빌려보면서, '2학기 때는 저 출판사 책을 사야지.' 눈독 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고등학 때까지 사교육 없이 무사히 졸업해, 내가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다. 남들의 기준엔 그렇게 대단한 곳이 아닐 순 있겠지만, 스스로는 만족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학창 시절, 진정한 학업의 자율성은 그 서점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어느 참고서가 좋은지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 봐도 정보가 쏟아질 테지만 그때만 해도 믿을 거라곤 내 직감뿐이었다. 결국 실패한 직감이었지만. 그러나 확실한 건, 당시의 나는 여러 출판사책들을 접었다 펼쳤다를 한참 동안 반복하며 나름대로 심히 진지했으며, 엄마 일말의 간섭없이 내가 고른 책들을 믿고 사주셨다.


직감으로 사고(buy), 살(live) 수 있던 때가 가끔 그립다. 지금은 모두가 작은 실패, 작은 불편, 작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미리 이곳저곳을 검색한다. 굳이 알아볼 필요가 없는 것도 있지만, 모두가 손쉽게 미리 찾아보는데 나라고 뒤처질 순 없으니 부지런히 스마트폰을 두드린다. 그러나 가끔은 방도가 없 불편해야만 했던 때가 만들어준 실패와 성장이 그립다. 그저 맛집이란 지인들의 구전(口傳)만이 전부이고, 내 위치를 모른 채 지도에 의존해 골목골목을 다니며 목적지를 찾아가던.




20대 초반, 해외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활성화 돼있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의 지하철 역과 인근 지도를 여행책에서 오려내거나, 인쇄해 수북히 들고 갔었다. 그렇게 랜드마크만 찾아 골목을 돌고 돌다 보면, 생각지 못한 예쁜 가게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가끔은 아주 소소한 것들까지는 알 수 없으면 좋겠다. 몰랐으면 좋겠다는 말보다는 알 수 없으면 좋겠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그저 내 직감에 의존해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으면. 우연한 성공이든 예정된 실패든. 남들보다 뒤처질까 걱정하는 불안보다는, 모두에게 공평한 사소한 모험 앞의 당연한 불안이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직감으로 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수집하려고 한다. 나는 그렇게나 중요한 성적과 직결되는 참고서도 직감으로 호기롭게 사들였던 아이였는데, 왜 요즘은 아주 작은 일마저 실패하고 싶지 않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지.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메모하지 않는다. 어디서 봤던 건지, 얼마를 주고 샀던 건지. 오로지 내 기억과 직감에 의존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사거나 경험한 뒤, 내가 일부러 찾아보지만 않으면 내 손해 여부는 알 수 없다. 굳이 손해 본 걸 알게 되더라도, 오히려 그렇게 각인된 실패 덕분에 다음엔 더욱 고민 없이 행동할텐데, 그러다보면 덜 손해보지 않으려나. 효율의 측면에선 좀 뒤떨어지겠지만. 그저 내 직감과 선택을 믿어준 그 시절의 엄마처럼, 이젠 내가 나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다.



이번 주엔 며칠간 비대면 교육이 있어, 자가격리자처럼 기숙사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교육을 들었다. 빨리 점심을 해결하려고 점심은 컵밥으로 때웠는데, 저녁은 제대로 챙겨 먹고 싶었다. 사실 기숙사 주변은 공단지역이라, 크게 식당이라 할 곳이 없다. 화장끼 하나 없는 얼굴로 겉옷 하나 걸쳐 입고 공단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주 고객인, 지도앱에 상호명도 후기도 나오지 않는 밥집으로 향다. 얼마 전부터 그저 가까운 곳에서 밥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에 자신 있게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가격도 맛도 대체로 괜찮았다. 그러고 보니 맛집은 후줄근하게 입고 혼자서는 갈 수 없을 텐데, 긴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퇴근 후 씻고 나와 가만히 거울을 보는데 거울 위에 쌓여있는 먼지들이 눈에 훅 들어다. 알코올을 뿌려 싸-악 닦고 나니,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 부담스럽다. 이렇게 뿌연 걸 어떻게 지금껏 모르고 살았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 제대로 보려고 그렇게 애썼으면서, 정작 나 자신은 이렇게 뿌옇게 보고 있었다니. 더욱더 선명하게 보이는 민낯을 보고 나니 이런 몰골.. 아니 이런 차림으로, 이런 자연스러움으로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공단 밥집이 갑자기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민낯으로 따낸 우연한 성공, 마음에 든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알 수 없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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