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첫 전보는 이전보다 규모가 큰 곳으로의 발령이었다. 집 근처로 가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맡게 된 업무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의사와 상관없이 내 업무는 정해져 있었고, 다들 낯선 곳에서 온 나의 업무능력에 대해 기대까지 하고 있는 눈치였다. 일도 버거운데 저들의 기대까지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쓸데없는 부담감에 매일 짓눌려야 했다. 앓는 소리는 농담으로 포장하고, 모자란 능력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채웠다. 그렇게 야근을 하면서 저녁 늦게 업무로 남아있는 교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는데, 그와도 처음엔 그렇게 친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나와는 연배가 한참이나 차이가 나는 데다 희끗희끗한 단발머리에 개성이 강한 장년의 그는, 무심한 듯 다정한 분이었다. 내가 부족한 능력을 농담으로 포장하며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때마다 그는 늘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아주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하라고 그럴 싸한 멘트는 아니었지만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도 어때. 그땐 무엇이라도 좋은 말이라면 무조건 흡수해야 하는 때다 싶어,어떤 응원이든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런 일련의 시간들로 그분과 내가 친해진 줄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와 내가 특별히 더 친해진 계기는 따로 있다. 언제쯤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때였다. 그는 교내에서 효자로 소문나 있었고, 나도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모친상을 당한 그의 마음이 어떨지 아주 미약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례식장이 타지였는지 개인적으로 다른 일이 있었는지 장례식장에는 가보지 못했고 부의금만 송금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오랜 특별휴가를 끝내고 출근을 한 그와 업무상 통화를 해야 했는데, 역시나 오랜만에 듣게 된 그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많이 힘드시죠?"하고 물었을 때, 그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좀 힘드네."
내가 알던 어른들은 가급적 아랫사람의 안부에, 말이라도 '괜찮다'며 애써 밝은 척을 하려고 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그는 솔직했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응원만 해주던 목소리에 슬픔이 잔뜩 들어간 그날의 음성은 내 귀에 심히 안쓰러웠다.
바로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고 있다가 문득 어제의 그가 떠올랐다. 편의점에 들러 어른들이 드실만한 것들로 이것저것 산 뒤, 사무실이 아닌 그의 방으로 향해 비닐봉지를 문 앞에 걸어두었다. 난 늘 출근이 빠른 편이었기에, 그를 직접 만나 전해줄 순 없었다. 그리고 사실 생색낼 일도 아닌데 직접 만나 전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곧바로 그에게 먹을 것들을 방 앞에 걸어두었으니 출근하면 챙겨드시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없었으나, 오히려 좋았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늦더라도 '괜찮다'란 말이 듣고 싶었으니까.
그 이후에 한 번도 그와 그날의 일을 대화로 나눈 적은 없었지만, 그가 나를 다른 직원들보다 더 애틋하게 여긴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계속 유별나지는 않지만 돈독한 우정을 유지했고 그는 머지않아 정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정년퇴임식날, 의도치 않게 엉엉 울었다. 일부 직원들은 이런 일화들을 알지 못하니, 내가 그와 어떤 접점이 있어 그토록 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세대를 넘어선 애틋한 동료애를 일일이 다 설명할 순 없으니.
감사실로 발령 난 뒤 이 일을 하며 속상한 일 중 하나는 친한 사람들이 있는 기관에 조사를 나갔을 때에, 그들이 조사대상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편하게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얼굴을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피감기관에 중립적인 태도와 비밀을 유지해야 하니, 함부로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고 눈빛 교환이나 점심시간에 오가면서 나누는 가벼운 인사가 전부다.
이번에 조사를 나간 곳에는 유난히 친분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아쉽게 스쳐야 했고 그럴 때마다 서로가 안타까웠다. 특별히 그곳엔 항상 만날 때마다 유쾌한 웃음을 주는 이모 같은 과장님이 계셨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조사 기간 중엔 그녀와 타이밍이 맞지 않아 오랜만의 만남인데도 얼굴 한 번을 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한창 내가 조사 중이었던 때에, 감사장 문고리에 비닐봉지 하나를 걸어두었으니 나중에 찾아가라며 톡을 보냈다. 문을 열어 확인해 볼 새도 없이 당시 나는 조사에 몰두해야 했고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그녀가 걸어두고 간 비닐봉지를 열어볼 수 있었다. 안에는 영양제와 주전부리, 그리고 작은 시집이 들어있었다. 선물들은 종이가방에 한 번, 그리고 검은 비닐봉지에 한 번 더 싸여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혹시나 열어볼까 싶어 평범하게 보이려 애썼음이 느껴졌다. 나도 걸어봤으니 안다. 요쿠르트, 녹즙 배달원이 걸어놓고 간듯한 무심한 봉지처럼 보여야 타인의 눈을 피할 수 있음을.
그중 그녀가 넣어둔 시집의 제목이 독특했다.
'충분하다'
사실 그녀는 내가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즐긴다는 것을 안다. 내가 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던(말해줄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급하게 본인이 읽던 시집을 같이 넣은 듯했다. 연필로 줄을 그어둔 페이지도 있었는데 그녀의 감동포인트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사용감이 있어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시집 겉표지에는 노란 포스트잇에 내 이름을 적어 붙여두었는데, 시집의 표지 그 자체로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왔겠지만, 아니라고. 넌 충분하다고.
평범한 비닐봉지에 들어간 안부 인사. 평범하게 보이려 애썼으나 그 안에 들어있는 마음은 결코 평범할 수 없음을. 그렇게 그녀에게 애틋한 고마움을 느끼면서,오랜만에 문득 오래전 나 또한 누군가의 방문 앞 비닐봉지로 안부 인사를 걸어두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동시에 여기 또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와, 머지않은 시일에 편한 자리에서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싶어졌다. 평범하지만 아주 애틋하게.
그는 퇴직 이후에도 아주 가끔 사진 한 장으로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어떨 때는 들에 핀 꽃사진으로, 명절 때는 어른들이 흔히 돌려 뿌리는 명절을 잘 보내라는 이미지 파일로. 무심코 툭 보내진 사진에 나름대로 답장을 보내보지만 역시 그는 읽기만 할 뿐 내 톡에 대해 아무런 답장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그것이 그 나름대로 검정 비닐봉지로 포장한 평범하지만 애틋한 안부인사라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