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으로 이르는 시간

날 것 그대로의 호칭

by autumn dew

입사 초반에는 몇몇 선배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부르는 게 싫었다. '대리', '과장'처럼 직위를 갖고 싶어서, 번듯한 직장인이고 싶어서 입사한 건데 그런 대우를 해주기는커녕 직위를 다 떼고 '00 씨'하고 부르니 '내가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했나.', '직장인처럼 보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보다 남들의 입을 통해 더 많이 불리도록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인데, 그땐 이름보다는 이제 막 취득한 그럴싸한 신분으로 먼저 불리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스물다섯에 들어간 첫 직장에서 이직 없이 지금껏 잘 버텨내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며 감사한 것은 누군가에게 폐 끼치지 않고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마련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고마운 것은 이곳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알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사람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이직과 퇴사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나는 지역과 업무를 오가는 인사이동 속에서도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금껏 잘 살아내 왔다. 어릴 적 친했던 친구들은 모두 결혼과 육아로 대부분 까마득해졌는데, 이곳에서 친구 같은 후배들과 이모나 삼촌 같은 선배들을 많이 만나 다행히 구멍 난 인관관계를 잘 보충했다. 그들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나는 분명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언제부터, 어떻게 친해졌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되고 소중한 후배들을 부를 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히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 어떤 직급도 붙이지 않고 이름으로만. 사회초년생 시절,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을 떠올리면 다소 모순적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다시 직급으로 부른다고 상상하면 어색하기 그지없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직급으로 불렀는데, 생각해 보니 유독 친해지고 싶었던 후배들은 성을 떼고 이름과 직급만 붙여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람으로서 이름은 이름대로, 사회인으로서 직급은 직급대로 불리고 싶은 때임을 나도 알고 있었으니, 두 가지를 다 채워주고 싶었다.


그러다 켜켜이 쌓인 그들과의 시간 속에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직급으로서의 호명은 도태되었다. 회사 안이면 모를까 밖에서 만날 때엔 있는 그대로 그 친구의 이름만 불러주게 되었다. 직급으로 정렬된, 정돈된 시간은 그만하면 충분한 듯했으니까. 회사에서 충분히 직급으로 불릴 테니, 덜 불리지만 소중한 이름으로 나는 그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들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데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따뜻하다.


입사 초반, 나를 '00 씨'라고 불렀던 이모 같은 과장님이 계시는데, 그녀는 여전히 나와 둘만 있을 때엔 직급을 떼고 '00 씨'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나를 '00 씨'라고 불러줄 때에 기분이 좋다. 이젠 다른 사람들처럼 'ㅊ과장'이라고 부르면 서운할 정도로. 그래서인지 나도 그녀를 부를 때에 성을 붙이지 않고 이름으로 '00 과장님'이라고 부르다가, 가끔은 사회초년생 시절 멋모르고 내뱉은 통칭의 호칭처럼 '선생님'이라고도 부른다. 특히나 이제는 사회초년생 시절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가끔 아무렇지 않게 '00 씨'하고 나를 부를 때,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더 정이 간다. 가장 멋모르고 순수한 시절, 직급이 과분했던 때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름만은 과분하지 않았으니까.



주말 동안 친한 후배들과 만나 연말의 소회를 나누며, 수없이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되어 각자 다시금 내일의 출근을 위해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날 것으로 만났던 우리는, 내일이면 다시 이름보다 직급이 더 자연스러운 곳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말하기엔 다소 어색한, 그러나 모두가 나에게 이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름. 어릴 땐 수없이 불리던 이름인데, 어른이 되고 나니 오히려 이름은 신분 확인용인가 싶을 정도로 다정스레 불릴 일이 크게 없다. 어른이 되어 새로이 만난 이와, 이름으로 이르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 걸까. 그러고 보면 내가 이름으로 부르는 이들도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다 언젠가부터 직급과 성을 떼고 호명하게 된 것이니, 정확히 계량할 수는 없지만 이름으로 이르는 데에는 일정 수준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어른들의 생을 보아하니, 언젠가부터 다들 이름을 조금씩 잃는다. 얼마의 시간이 쌓여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각자의 이름이 신분확인용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왠지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때에 제대로 그 사람에게 이를 수 있을 것 같으니, 조용히 그리고 정중히 시간이 쌓이길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이름으로 마주하게 된 이들과는 아주 오래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도록 다정하게 서로를 불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알려주는 것이다. 다른 이가 불러주는 나의 이름이 어떻게 들렸었는지, 그리고 들리는지를.


앞으로도 계속, 나는 이름을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녀)도 이름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