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문장
올해의 마지막 글이다. 예측할 수 없는, 교통사고 같았던 한 해. 감사실로 발령받아 적지 않은 나이에 고향에서 꽤 먼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고, 제대로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한 해 동안 대략 서른 곳 정도 출장을 다녔다. 생활반경과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바뀌었기에, 사실 그 어느 해보다 괜찮아 보이려 품을 많이 들였다. 차라리 풋풋한 젊음과 패기가 가득한 20대에 이랬더라면, 힘들어도 그 벅참이 당연하여 얼마든지 티 내고 다닐 수 있었을 테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일상의 배경화면을 옮기는 일엔 그 배경에 잘 어울리는 피사체가 되기 위해서, 자연스러운 포즈와 시선을 구사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했다. '괜찮아'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순간이, '그 정도면 됐다' 말하지만 부족한 순간도 많았고, 그렇다 보니 종종 미완성된 그림에 억지 설명을 덧붙여 그것을 추상화라 우기며 지내왔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천주교 신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고해성사에서 그간의 죄를 고해야 했다. 그동안의 고해성사에서 나는 대체로 아끼는 이들에게 닿지 못했던 미안과, 타인에게 닿을 수 없었던 불편한 이야기를 그의 뒤에서 논한 일들을 고했으나 이번엔 달랐다. 타인을 앞세우느라 뒤로 밀쳐둔 자신에 대한 미안과, 굳이 내뱉을 필요가 없었던 스스로의 부족한 이야기들을 내 입을 통해 내 귀가 듣게끔 내버려 둔 것을 신부님께 고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신자들을 상대해야 했던 신부님으로부터 괜찮은 피드백을 얻을 순 없었지만, 이렇게 한 번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내 입으로 고한 것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후련했다.
지난주, 후배들과의 연말 모임으로 서울 구경을 하다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몇 년 전, 어느 서점을 갔다가 생일별로 생일이 같은 작가가 쓴 책을 추천해 주는 코너가 있었고, 나는 그때 내 생일이 윤동주 시인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알고 난 뒤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윤동주 문학관'에 가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이번에 기회가 닿아 생일을 앞두고 그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었지만 자필로 쓰인 그의 시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시집, 여러 사진에 둘러싸여 있으니 아주 오래전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난 이가 담긴 공간에서, 왠지 같은 날 태어난 나도 환영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실은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 그와의 연결고리를 갖고 싶었던 걸지도.
작고 다소 심심한 소도시가 첫 발령지였던 나는, 퇴근 후 할 일이 없어 몸서리치다 근처 어느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었다. 당시 나름대로 재미를 붙여서 무슨 구절이든 마음에 드는 글을 최대한 많이 써보려 했었는데, 그때 유난히 마음에 들었던 시 중 하나가 윤동주 시인의 <병원>이었다. 시인의 시대적 아픔에 절대로 내 처지를 비할 수 없지만, 사회초년생 시절 멋모르던 젊음이 괴로웠던 나에게 그 구절은 마음에 콕 박혔다.
한동안 프로필 사진을 해두었기에 시 구절은 입에 절로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윤동주 문학관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시의 앞과 뒷부분을 연결하여 읽을 수 있었다. 그래, <병원>은 내가 외우고 있던 그 구절이 전부가 아니었어. 불안한 시대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젊은이의 시련만을 곱씹으며 지냈는데, 시의 말미에서 시인은 병원에서 만난 여인뿐 아니라 자신의 쾌유도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동질감을 느끼려 고군분투했던 나도 다시금 새로운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생일과 연말을 앞두고, 어쩌면 조금은 다른 의미의 병원을 다녀온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10여 년 전의 어린 날, 그곳에서 나는 젊음을 제대로 소비하지 못하는 답답함에 몸서리쳤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때도 나름대로 관성을 버리고 집을 떠나왔고, 역시나 어른스러워 보이려 품을 많이 들여 지내고 있었다.
그때, 내가 새기고 있던 구절은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언제 쌓였는지 모를 까마득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올해의 마지막 출장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첫 발령지였다. 처음 집을 떠나왔던 그 해와, 오랜만의 대이동에 자연스러워 보이고자 품을 많이 들인 올해. 공통점이 많은 시간 속에서 지금의 나는 <병원>의 진짜 마지막 구절을 아로새긴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올해의 마지막 출장지와 마지막 글.
이 지나친 우연, 이 지나친 소회, 이젠 성내지 않을 것이며. 나는 나의 지난날이 - 아니 앞으로 내 지날 날들이 다행이고 복되기를 바라며, 어린 날의 내가 머물렀던 그곳에 하룻밤을 묵고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 떠난다.
그렇게 2024년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