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고 해는 길어지고 있으니

어둠은 짧아지고 있다

by autumn dew

해가 바뀌고 시작된 첫 출근에 이어 주말까지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이 없었다. 연말을 본가에서 보내고 올라온 탓에 지난해의 내가 이듬해의 나에게 미뤄둔 일들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새로이 던져지는 업무들도 만만치 않았고, 그러다 보니 주말까지도 출근을 해야했다. 한 해의 첫 주말을 이렇게 바쁘게 보낼 일인가.


지난해 겨울을 앞두고 썼던 어느 글에서 나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열심히 살겠다고 써뒀었다. 해가 지면 조금 덜 열심히 살고 그만큼 나 자신을 돌보겠다고. 이제 동지가 지났으니 점점 길어질 해의 시간만큼 다시 시간을 열심히 써야 하는 때인 건가. 이제 막 1월이 시작되었지만, 이미 달력엔 해야 할 일과 떠나야 할 출장지들로 가득하다. 빡빡한 스케줄과 비례해 흘러가는 시간만큼 점점 해 뜨는 시간도 빨라질 테다. 이러나저러나 어둠이 조금이라도 일찍 걷히는 것은 덜 서글프니 반가운 일이다. 아침 출근이 조금 덜 구슬펐으면 좋겠다.



기숙사에 있는 동안 끼니를 챙겨 먹을 때마다 ott를 통해 예능을 본다. 요즘엔 tvN에서 하는 '핀란드 셋방살이'라는 프로그램을 챙겨보는데 남자 연예인 넷이서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 핀란드의 깡촌에 들어가 셋방살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가 지지 않는 핀란드의 여름. 하루를 꽉 채워 끼니를 해결하고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이 소소하니 즐겁다. 핀란드는 내가 좋아하는 나라이기도하고, 특히나 해가 지지 않는 핀란드의 백야를 다시금 화면으로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크나큰 웃음이나 가슴에 와닿는 이렇다 할 교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방구석에 앉아 편하게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의 터전을 훔쳐보는 일은 역시나 즐겁다.



여행할 때 꼭 그 지역의 시장을 들르는 편인데, 핀란드 헬싱키에서 갔던 어느 실내 시장이 떠오른다. 그 가운데 어느 노부부가 하던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를 갔었는데, 나무 조각에 핀란드어로 된 알 수 없는 문구가 한가득 새겨져 있었다. 내가 열심히 쳐다보고 있으니, 주인 할아버지가 말했다. 바로 옆에 있는 나의 아내가 만든 것들이라고. 무슨 말이 적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떤 온도의 문구가 적혀있는지는 알 것도 같았다.


'아름답다'의 어원이 '나답다'라고 하는데, 그 노부부가 그들만의 장소에서 그들다운 언어가 새겨진 물건을 팔며 다정하게 함께 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참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복수(複數)로 쓸 수 있다면, 그런 장면이 아닐까.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나도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내심 그들을 부러워하며, 미소를 머금고 시장을 나왔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핀란드의 여름은 백야의 시간만큼 나에게 복수의 아름다운 장면을 오래 남겨주었다.



오래도록 여행에서 가져온 소중한 장면과 보물 같은 시간의 가치를 알아서인지, 지난 연말의 사고는 남일 같지 않았다. 여태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으나, 어쩌면 그 모든 시간들이 당연한 여정들이 아니었음을. 모두들 그렇게 멀리 떠나 아름다운 시간을 보고, 듣고, 만들고 왔을 텐데. 아름다운 사람들과 나눌 기대에 부풀어.


첫 해의 시무식을 앞두고, 애도를 표하는 검은 리본 배지를 전달받았다. 헐레벌떡 바쁘다가도,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이런 투정은 접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지가 지났으니 깊은 밤들은 물러가고 점점 밝아지는 시간이 길어질 텐데, 그만큼 이 많은 슬픔도 따듯한 볕에 조금씩 말릴 수 있을까.




신정, 올 해의 첫 외출은 가족들과 함께 합동분향소를 다녀온 일이었다. 이 일은 그간 해오던 애도의 몇 년치를 합쳐야 하는 일일까. 분향소에 들어가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르고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들과 그들의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한 해의 시작에 너무 많은 슬픔을 보탰다. 이 해의 시작은 슬픔으로 짙게 물들었으니, 이 해의 마지막은 많은 이들이 서로의 다음 해를 응원하며 행복으로 충만하여 꽉 닫히길 소망한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러니 어떤 형태의 어둠이든 아주 조금씩이라도 걷히기를, 감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