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기특하여라

제 새해 소망입니다만

by autumn dew

새해 첫 출장. 한파가 절정인 때,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진 곳으로 출장을 떠났다. 대프리카 출신에겐 눈이 익숙지 않은데, 안타깝게도 출장에 가 있는 5일 동안 거의 매일 눈이 내렸다. 내리는 눈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기엔 이미 너무 늙어버렸고 특히나 운전을 하고 나서부터는 눈이 오면 겁부터 났다. 차라리 기온이라도 영상이면 내리자마자 녹아버릴 텐데 영하권의 초절정 한파라니. 운전을 하다 잠시라도 정차해야 할 때엔 앞 유리에 덮개를 덮어놓고, 다시 주행을 앞두고서는 타이어에 미끄럼 방지 스프레이부터 뿌렸다. 낯선 곳, 낯선 한파지만 그래도 내 차가 있어 같이 간 선배와 편하고 따뜻하게 다닐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고, 그런 만큼 내 차를 더 조심스럽게 다루고 더 아껴주고 싶었다. 주인도, 차도 참 기특한 지고.


그러고 보니, 새해를 너무 아무 생각 없이 맞았다. 새해에는 올해엔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던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던가 그런 희망사항과 키워드를 늘 생각해 두곤 했었는데, 이번 연말연시에는 그런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난 연말에도 새해를 그저 다음 주, 다음 달처럼 지금의 연장선상으로 치부했고 그렇게 새해라는 어떤 의미부여도 허용되는 1년에 한 번뿐인 근사한 마디를 아무생각 없이 지나버렸다.



그러다 문득 지난 연말 아끼던 사람들에게 무심코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한 해 동안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으니,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거기다 혹 또다시 새해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마저도 잘 봐달라고 미리 선수를 쳤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새로웠던 지난해. 돌이켜보니 자다가 이불을 확 차버릴 것처럼 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른 것도 많았고, 부끄러운 마음에 횡설수설 자기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부족한 선택을 덮으려 하기도 했다. 그런 못난 모습을 봐주고 위로와 응원을 건넸던 누군가에게 그해 연말, 나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이해를 바람과 동시에 그럼에도 다시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해의 내가 너무 기특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나처럼 그대도 스스로를 기특해하고 대견해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며, 한 해를 열심히 살아낸 스스로를 각자 칭찬해 주자고 말했다. 먼 곳을 떠나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한 해를 빈틈없이 살아냈던 지난해. 그래서 그렇게 다른 이에게,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울 수 있지만 (여기서도 나는 부끄러웠구나) 나는 내가 참 기특하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엄마한테도 말했었군. '엄마, 난 내가 참 기특한 것 같아.'하고.


새해의 다짐을 생각하다 지난해 내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다시금 생각했다. 아, 올해도 부끄러웠으면 좋겠다. 올해도 기특했으면 좋겠다.




'시대예보'의 저자, 송길영 작가가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끄러움을 언급했던 것이 떠올랐다. 10년 전 자신이 쓴 책을 읽고 부끄러웠다는 작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부끄럽다는 건 그만큼 지금의 내가 나아졌기 때문에 그 글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이었다고. 그러니 지금 쓴 글도 10년 뒤에 부끄러웠으면 좋겠다고.


나 또한 지난 글들을 읽을 때마다 부끄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그것은 내가 더 나은 안목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는 인상적임과 동시에 부끄러움이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해 줬다. 지나온 시간이 부끄럽다는 것은 그때에 비해 지금 훨씬 더 좋은 혜안을 갖고 있다는 것.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언젠가 다가 올 연말, 그때의 내가 나의 한 해를 돌아봤을 때 부끄러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1년 치만큼 더 자라 있으면 좋겠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그리고 계속 부끄러워야 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내가 기특했으면 좋겠다. 제자리 걸음할 틈 없이, 올해도 분명 분주할 것이다. 그러다 가끔은 눈물을 쏙 뺄 만큼 힘든 시간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낸 내가 기특했으면 좋겠다. 뭐 그 정도 가지고 기특하다 생각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나는 스스로를 육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어린아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듯 자기 자신을 기특하다 여기는 게 뭐 어떤가. 어떤 고된 일을 지나왔을 때, '고생했다', '수고했다'보다 '기특하다'가 훨씬 더 칭찬 같은 걸.



이번 주말, 드디어 1년 정도 머물렀던 기숙사를 떠나 새로운 사택으로 이사를 했다. 바쁜 출장 일정에 주말을 쪼개 작은 승용차로 이사를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인천에 올라왔을 때엔 겨울을 살아낼 정도의 짐만 챙겨 왔지만, 그 사이 계절별 옷과 계절별 아이템이 모두 늘어나 있었다. 게다가 잦은 출장에 내 일정도 예측이 어려우니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이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아 혼자 해내야 했고, 며칠에 나눠서 하면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나 이 많은 짐을 가지고 혼자 이사를 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출장을 가기 전 주말부터, 이틀 정도 짐을 나눠 옮기며 틈틈이 청소도 했건만 정작 이삿날 승용차 한 대 분량의 짐을 보고는 차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혼잣말로 말했지. 아, 나 정말 기특해.




부끄러움과 기특함이 공존할 수 있을까. '용기'가 있으면 둘 다 가능하지 않으려나. 용기에 대한 결과가 다소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그 용기가 과감했음을, 지금은 그보다 더한 용기를 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면 부끄럽지만 기특할 것이다.


이제 이사를 다 끝내놓고 글을 쓰며 지난해를 반추하고, 다시 이제 열흘 정도 지난 새로운 해를 준비한다. 고작 열흘의 시간도 기특했는데, 앞으로의 시간도 얼마나 기특할는지. 그러다 문득 기특하다 여긴 지난해를 돌아봤을 때 혹 부끄러운 것이 발견되더라도 당황하지 않았으면. 그것은 그만큼 내가 나아졌다는 반증일 테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것은 비단 올해의 희망사항만은 아닐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부끄러움을 딛고 계속,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