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사(監査) 일기
아주 어릴 적부터 발라드를 즐겨 들었던 나는 이수영의 노래를 유난히 좋아했었다. 얼마 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수영 노래 중 좋아했던 '스치듯 안녕'이 흘러나왔고, 그간 잊고 있었던 노래를 오랜만에 듣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바로 휴대폰 음악 앱의 플레이리스트에 이수영의 노래를 몇 곡 추가했고 한동안 출퇴근 길에 자주 들었다. 어릴 때부터 가사를 곱씹는 것을 좋아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시적이거나 의미가 있는 가사의 곡들을 자주 추천하곤 했었는데, 특히나 '스치듯 안녕'에는 기억 속에 콕 박히게 된 한 줄의 가사가 있었다.
한 번만 더 무정하면 되는데, 괜히 인사 말아요.
그 나이에 이해하기엔 다소 힘들었던 '무정하다'는 말.
'무정한 사람', '무정한 세월'처럼 어른들은 그 표현을 종종 사용하곤 했지만, 어린 나이에 접하기엔 다소 낯선 형용사였고 당시엔 확실하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다. 반대말로 '유정하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자주 사용되는 것 같진 않은데, 어쩌다 무정하다는 말은 더 자주 쓰이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도 정 없이 쌀쌀맞다는 의미의 무정하다는 말은, 눈물도 정도 많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했다. 무정한 사람이 되진 말아야지, 하고.
감사실에서 일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쭈뼛대던 처음과는 달리 원칙에 맞지 않는 일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연휴의 마지막 날, 남들은 마지막의 마지막 휴식을 취하던 때에 미리 다음 출장지에 가 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시작해 3일 동안 매일 장소를 옮겨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불편한 대면을 끝내고 돌아왔다.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친분과 관계없이 내가 하는 일의 주관을 유지하는 일이 벅차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번 주의 키워드는 '무정함'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무정하다는 말이 매정하다는 말보다는 덜 차갑지 않을까, 하고 자기 위안을 삼으며.
부끄러워하는 이, 뻔뻔한 이, 속을 알 수 없는 이. 다양한 사람들과 불가피하게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예전보다 훨씬 무정해진 내 모습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집착했던 예전과 달리, 상대방이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해 줄까에 더 집중했기에 의도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감정을 최대한 덜어내야만 했다. 의도란 것이 내 마음이 아닌 원칙에 기반한 것임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앞서는 감정이 방심한 사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 때면 잠시 말을 잃거나 가끔은 말을 더듬기도 했다. 그래서 일할 때만큼은 더 무정해지고, 더 말을 잘하고 싶어졌다.
지금의 이런 전환을 요즘 흔하디 흔한 MBTI 표현법과 같이 'F에서 T가 되어간다'처럼 단순하게 정의 내리고 싶지는 않다.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오지라퍼에 쓸데없이 눈물이 많은 사람이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기본적인 성향이 바뀌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닌 듯 하기에. 그러나 다행히도 '무정함'이란 단어를 찾았다. 심연의 감정을 눌러놓은 채 무정함을 수면 위로 띄운다. 감정을 덜고,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일할 때만큼은 무정해져야 한다.
어떨 때는 이러다가 감사실을 떠나게 되는 때에 다들 나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마주할지 모를 일이니. 그러나 아직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어느 누군가는 어쩌면 이런 나의 무정함에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번은 거짓말에 거짓말로 응수하며 자기주장을 이어나가는 이에게, 그대가 어그러뜨린 원칙으로 인해, 원칙을 지킨 누군가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생각하면 안 되지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내 입으로 말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던 이에 자주 해당되었던 사람이 나였기에. 남의 이야기인 척 말했지만 그건 사실 나의 이야기였다.
지난날의 나를 대변하는 마음으로 그 말을 내뱉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고,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그때의 나처럼 원칙을 지키고 있을 이름 모를 누군가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스치듯 안녕'의 노래 가사와 달리, 나는 무정함으로 원칙을 지킬 때마다 누군가와 속으로 인사를 한다. '우리가 옳았어요!'하고. 그래서 이번 주에 행한 무정함에도 후회는 없다. 역시나 우리가 옳았으니까.
'무정하다'의 반대말인 '유정하다'라는 표현은 자주 쓰이진 않지만, 대신 이런 무정함의 뒤편에 생겨나고 있을 이름 모를 위안의 양은 유한하지 않으며 일정 부분은 유정하리라 믿는다.
그렇게, 이번 주의 출장지도 스치듯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