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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Nov 05. 2022

나의 상냥한 시간도둑에게

그녀 기억지 못할, 한참 지나버린 야기. 그리고 때늦은 인사.


몇 년 전에도 그녀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제목 '그녀의 엉뚱함을 너무 사랑해'라고.


스무 살, 대학 동기로 만난 엉뚱하고 유쾌 그녀는 나를 항상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 무난할 뻔했던 스무 살이었는데, 그녀의 손에 이끌려 동아리에 들어갔고 덕분에 스무 살 여름부분을 구룡포에서 보냈다. 지금껏 살며 그 오랜 시간을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지냈던 적은 그때뿐이었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농활에도 끌려가서 볕 아래에서 호박을 따고 사과나무 잎소지도 해봤다. 마을 잔치에서 어른들이 주시는 막걸리를 사발로 마시고 大자로 뻗어버린 일까지. 모두 그녀가 만들어 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아- 그러고 보니 성년의 날에 각자 동경하던 선배에게 장미꽃도 전해줬네. 다 그녀가 가자해서 갔고, 하자해서 했다. 혼자였으면 절대 얻지 못했을 추억들.


현재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어느 시골마을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꼭 연락을 준다. 지금 이곳이 너무 예쁘다고. 지금이 아니면 놓칠 수 있으니 어서 와서 보고 가라며.


어른이 되고 보니, 다른 이에게 '너의 시간을 나에게 할애해달라'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알게 되었다. 왜냐면 어른은 할 일이 많고, 또 그만큼 쉬어야 할 시간도 필요하니까. 그 사람을 아끼는 만큼, 커진 배려심에 시간을 할애해달라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그런 어른이지도, 그리고 그런 어른이 되지도 않았다. 언제나 나에게 시간을 내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몇 년 전 가을, 그녀는 나에게 갑자기 템플스테이를 가자. 당시 내 일이 성수기였던 때라 조금 망설여졌지만 결국엔 가겠다고 했다. 가 하자는 대로 해서 재미없었던 일은 없었으니까.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 아래에서 돗자리를 펴고 스님과 차를 마셨는데 그때 스님이 말씀하시길,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뚫어져라 모니터만 바라보던 내 눈을 잠시나마 다른 세상으로 돌려준 건 역시나 그녀였다.

스님과 차담을 나누던 곳

아,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따로 있는데-

얼마 전, 그녀 가을 을 만끽하러 신이 근무하는 시골마을에 놀러 오라며 올해도 어김없이 나에게 톡을 보냈다. 오랜만의 대화를 주고받았던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누워있는데 불현듯 사회초년생 시절 그녀와 주고받은 통화가 떠올랐다.


나의 첫 발령지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였고, 그때의 나는 누구나 겪는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성장통 유달리 심하게 앓고 있었다. 운동이라도 하자 싶어 퇴근 후 하릴없이 시내를 걷는 일이 저녁 일과였는데, 그날도 평소처럼 시내를 걷다 사택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녀와 통화를 했던 듯하다. 그 길은 항상 인적이 드물고 어둑어둑한 편이었다. 그때에 나는, 길이 좀 무섭긴 한데 그나마 너와 통화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어 그녀가 말하길,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디쯤이냐고. 지도를 캡쳐해 주거나 대략이라도 어디쯤인지 말해주면 자기가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곳에 가로등을 설치해달라고 글을 올리겠다 했다. 에게 그녀의 실력과 추진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검증 사항이었기에, 그 말 농담이 아니란 것 진작에 알았다. 분명 그때 그녀는 내가 주소를 알려주면 살아본 적도 없는 지자체의 그럴싸한 민원러로 바로 둔갑기세였다.


러나 그런 그녀의 , 당시의 에겐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했다. 당장의 내 외로움과 힘듦이 더 커 보였거든. 그래서 그저 나는 괜찮다고, 앞으론 늦게 다니지 않겠다 그녀를 타일렀던 것 같다.


그러다 며칠 전 그 밤, 그날의 통화가 불쑥 떠올랐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그녀의 마음은 특별하다 못해 각별했. 보통의 친구라면 '위험하니까 빨리 들어가.'로 마무리할 법한 이야기. 아마 그녀는 그날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내가 그곳을 오가며 방황 시간을 걱정했리라.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 고마움, 지금에야 깨달았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워있다 자기 물이 핑 돌았다. (가끔씩 베개에서 눈물 촉진제가 사되나 의심스럽다.)


내가 가장 약했던 시절, 가장 어두웠던 시간에 그렇게라도 불을 밝혀주려 했던 나의 상냥한 시간도둑 때문에.




오랜만에 '그녀의 엉뚱함을 너무 사랑해'를 다시 읽어봤다. (이 글은 주인공인 그녀도 알고 있다.)

글의 말미는 이런 내용이었다.


2017년, 스물아홉의 12월 31일.
'나에게 행복한 20대를 선물해줘서 고맙다'고 보낸 나의 톡에 그녀의 답장은,

'너의 30대도 즐겁게 해줄게'였다.


갱년기가 일찍 온 건지 눈물이 난다며, 서둘러 글을 마무리했던 것이 그 글의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고마웠던 일화를 이야기하면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

"내가 그랬었다고? 그렇게 말했다고?" 하며,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 것을 오히려 재밌어한다.


나는 그렇게 기억에 남기지 않고, 누군가가 고마워하는 일을 자연스레하고 있는 네가 멋스럽다. 고마워해 달라 생색내지 않고, 기억해 달라 상기시키지도 않는다.




그리고 오늘 침내 또다시 나의 시간을 뺏기러, 그리고 연말까지 친애하는 이들을 최대한 만나보겠다는 다짐의 일환으로 너를 만나고 왔다. 너는 여전히 해맑고 순수하고 엉뚱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고, 덕분에 나 흔쾌히 내 시간을 훔쳐가게 두었다.


분명 너는 그날 밤의 통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너를 만 오늘, 차마 그날의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거든. 그이 글로 대신하려 하니, 부디 내 인생에 온갖 유쾌한 변수를 가져다준 이 글을 는 동안만은, 내가 너에게 따뜻한 시간도둑이  수 있었으면.

그녀가 빼앗아 간 시간의 풍경들


김동률 '답장'란 곡 뮤직비디오 댓글 중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이 노래는 사실 첫 줄과 끝 줄만 읽으면 된다.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사랑해 너를'

그런데 남자에게 이 두 마디를 온전히 말하기 위해서 무려 6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노래처럼 근사한 울림을 주진 못하겠지만 금까지 앞서 들러리로 세운 많은 문장들을 뒤로고 핵심을 전하자면- 이 글은 나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 가로등보다 더  일무이한 위로를 건네준 너에게 보내는 늦은 전언이니,


그때의 상냥하고 갸륵한 네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어 미안하온 마음을 다해 고맙다고.


그리고 그 미안함의 대가로 앞으로의 내 시간을 내놓으려 하니 으로도 틈이  시간을 훔쳐가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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