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반복의 성질
다음 주 출장지는 그곳이라고 말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니 거기 싫어하잖아."
맞지, 싫어하지.
이번에 가게 되면 1년 정도 되는 시간 안에 네 번이나 가는 것이었고, 갈 곳들이 얼마나 많은데 1년 사이에 네 번이나 간 곳은 그곳뿐이었다. 게다가 앞서 갔던 세 번의 출장 동안 그곳에 가 있는 내내 몸이 좋지 않았다. 매 출장을 다녀와서 병원에 가야 했고, 한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그러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와 합이 좋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또 그곳으로의 출장이라니. 그럼에도 한낱 직장인이 하고 싶은 일을 골라가며 할 순 없는 일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 한편엔 이름 모를 찝찝함을 안고 출장지로 향했다.
4박 5일 내내 품고 있던 기저의 불편함이 어떤 면역의 역할을 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이번 출장 중에 몸이 아픈 일은 없었다. 한 주 내내 비가 많이 와서 활동반경이 좁아져서 그런 걸 수도. 다행히 네 번의 출장 만에 그곳에서의 징크스는 깨졌다.
이 출장을 끝으로 상반기에 계획된 출장 계획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 그간 예정에 없던 출장지도 꽤 있었고, J로 살아온 나에게 지금의 감사실 생활은 모든 계획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흔히들 말하는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나아가 여기선 플랜 B나 때론 플랜 C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반복적인 출퇴근이 싫다고 읍소하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인 반면, 나는 제발 반복적인 출퇴근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최근엔 나에게 쉴틈을 주지 않는 일정에 울컥 화가 나, 선배에게 참지 못하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썩 내키지 않는 곳에서의 네 번째 출장을 다녀온 주말, 평소답지 않게 오랜 낮잠을 잤다. 그다지 늦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었고, 그 사이 놓친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분명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어야지 했는데 눈을 떠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양치를 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양치하는 모습을 몰래 여러 번 촬영해서 확인해 본다면 매 영상, 거의 같은 시점에 같은 방향으로 솔질을 하다가 일정 시점에 방향을 바꾸며 거의 일정한 타이밍에 입속의 거품을 뱉지 않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 중 사소하지만 다소 정교한 일이니, 분명 이것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본다면 솔질의 방향을 바꾸는 시점과 입을 물로 헹구는 횟수나 시간은 같거나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안타깝게도 이 장면을 무의식적으로 찍을 수가 없으니 검증할 수 없을 뿐, 이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행동습관 중 생활의 달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의 정확성을 가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 어떤 불편도 체감하지 않게 한다. 불편함을 일으키지 않으니, 정교한 반복작업에서 그 어떤 신비함도 못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것만큼 당연하되 안전한 일이 없는데. 그런 논리라면 나의 이 역마 가득한 일정 그 자체를 루틴으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
일요일 저녁, 한 주를 통으로 보내야 하는 출장지에 다다른 뒤 숙소에 도착해 가족들에게 도착을 알리며 방의 사진을 찍어 전송하곤 했다. 그리곤 사진에 꼭 덧붙인다. '이번 주 내 방'
누가 보면 타지에서의 일주일이 흥미로울 것 같기도, 또 어쩌면 고달파 보이기도 하겠지만 희한하게도 매일 밤 출장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걸음이 날을 거듭할수록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장지에서의 귀가 또한 다른 의미의 익숙함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물론 숙박업소를 들락날락 거리는 일이 썩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처음 숙소에 도착해 방문을 여는 순간 이번 주 내 방은 어떤 곳일까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고, 출장지에서의 마지막 아침에 짐을 챙겨 나오며 방을 돌아볼 때면 쓸데없이 석별의 정을 느끼기도 한다. 예측 불가한 일정 속에서 이런 기대감과 아쉬움을 갖는다는 것도 어쩌면 이 가운데 자연스레 자리한 루틴일지도.
이렇게 살다 보니 체화된 양치질의 기술마저 신비롭게 인지하고 있는 걸까. 다행히 이런 사소한 일마저 정교한 반복임을 깨달을 수 있는 수준이니, 바쁜 와중에도 이토록 사소하지만 당연한 것들을 늘려나가고 싶은 욕심이 든다. 그러나 그런 당연한 반복 중에는 불편한 반복과 불쾌한 징크스도 있을 것이며, 이 또한 그 당연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의도치 않게 깨질 수 있을 테니 욕심내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 당연함이었는지 징크스였는지는 그것이 깨지거나, 비로소 당연하였다고 인지되는 순간 결론지어질 것이니.
그렇다면 이제 끝내 깨지지 않을, 가장 당연한 것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나를 걱정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 또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출장 일정. 그리고 매일 하루 세 번의 정교한 양치질 정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