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이모의 크리스마스 선물
독실하진 않지만 천주교 신자로서 매주 주일미사는 꼭 가려한다. 사택 근처에도 성당이 하나 있어 주말을 이곳에서 보낼 때면 어김없이 성당에 간다. 사람이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일상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다고 적극적인 편은 아니니 늘 구석에 앉아 조용히 미사만 참례하고 나온다. 주로 토요일에 일찍 다녀오고 일요일은 집에서 푹 쉬는 편인데, 여타의 사정이 생겨 일요일에 미사를 가야 할 때면 부득이하게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사에 가야한다. 사실 그렇게 되면 조용하게 미사를 하기엔 글렀다고 봐야 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크게 성가를 부르는지, 일요일 저녁에 저만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이 가히 놀랍다. 신부님은 매번 강론 시간에 아이들에게 교리나 성경 말씀과 관련된 퀴즈를 내고 손을 들어 답을 맞힌 아이들에게 선물로 과자를 주시는데, 아이들은 그 시간을 가장 기다리는 듯 보인다.
신부님은 퀴즈를 내기 전, 출석을 체크하듯 학년 별로 몇 명이 왔는지를 먼저 파악하신 다음, 인원수에 맞게 문제 수를 배분해 유치부부터 고등부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퀴즈를 출제하신다. 당연히 고학년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는데, 나도 머릿속으로 답을 생각해 보지만 솔직히 못 맞힐 때가 많다. 보시다시피 난 유목민 신자니까. 그 와중에 가장 먼저 시작하는 유치부 퀴즈가 가장 유쾌하다. 매번 웃음이 나온다. 신부님은 조금 무덤던한 인상에 은근 시크하고 도도하신 분인데,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문제를 내기 시작하신다.
"자, 이번 퀴즈는 유치부만 맞히세요."
그리고 늘 그들에게만은 한 마디를 덧붙이신다.
"참고로 정답은 예수님이야."
가장 어린아이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신부님은 늘 유치부에게만은 질문과 동시에 정답을 알려주신다. 오픈북 테스트보다 더하다. 답을 알게 된 아이들은 문제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손을 들 준비를 한다. 그 모습들이 귀여워, 구석에 앉아 매번 몰래 흐뭇하게 웃는다. 그렇게 답을 맞힌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신부님의 모습을 볼 때면, 울면 선물을 안 줄 것 같다가도 끝내 주고 마는 따듯한 산타 같다.
가장 연약한 이들에겐 답이 쉽게 주어진다. 나도 누가 저렇게 나에게 주어진 과제들에 곧바로 답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나를 에워싸고 있던 모든 이가 모든 걸 떠먹여 주는 삶은 언제까지였던 걸까.
많은 이들이 감사실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면, 업무에 관한 건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여긴다. 나도 모든 업무를 해본 것이 아니기에, 아직 공부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답을 내려주길 바라거나, 가끔은 듣고 싶은 답을 내가 말해주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일명 '답정너') 이들도 있다. 그렇게 매번 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나에겐 그럴싸한 모범답안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명하게 답하고 싶다. 아무 말이나 하고 싶진 않다. 특히, '모르겠다'라는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슬기롭게 답변하고자 말을 아꼈던 한 해였다. 자신 있게 손을 들지 못하고 뒤에 숨어 있던 시간도 있었다. 많은 말을 아껴야 했기에, 한 마디 말과 또 보고서에 담기는 한 마디의 문장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답도 알려주지 않는데 기껏 떠올린 답도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다니.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나도 신부님처럼 답을 미리 알려주고 손을 들 자신감을 북돋아 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손쉽게 주어지는 답과 겨우 노력해 얻어야 하는 답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이들이 신부님의 문제를 맞혀 마침내 손에 얻게 되는 것은 작은 과자겠지만, 내가 문제를 맞혀 얻고 싶은 것은 그런 사사로운 것들이 아니었다.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일까. 아니, 궁극적으로는 꽤 괜찮은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단순히 몇 분 안에 먹어치울 과자가 아니라, 내일 또 다시 안팎으로 부끄럽지 않게 출근할 수 있는 나인지를 확인받고 싶었다. 그렇게 매번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갱신되고 싶었다. 이렇게나 추상적이고 거대한 보상을 원했으니, 내 앞에 닥쳐온 문제들에 답이 공으로 주어지지 않았겠지.
드디어 올해의 출장 여정이 끝을 향해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왔나.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고, 또 얼마나 많은 자문을 했던지. 열흘 정도 남은 올해의 나머지는 질문도, 답도 없는 일상을 살고 싶다.
우연히 인터넷 쇼핑몰의 크리스마스 에디션 코너를 구경하다, 귀여운 틴케이스에 들어있는 젤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사무실의 선배들 중 어린 자녀가 있는 분들에게 선물용으로 드리면 좋겠다 싶어 몇 세트를 주문했다. 막상 주문하려고 보니 몇 분을 제외하고는 다 어린 자녀가 있어, 비용이 적지 않았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고리대금업자이자 지독한 구두쇠 스크루지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알려주는 유령을 만나 그간의 삶을 반성하고 베푸는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다. 고로 크리스마스는 받기보다 베푸는 것이 더욱 미덕인 날이니, 주문 버튼을 과감히 눌렀다. 그리고 다음 주 24일, 그들에게 아이들에게 전해달라고 드리며 이렇게 말할 참이다. 댁의 아이들이 이거 누가 준 거냐고 물어보면, 꼭 아빠네 사무실의 예쁜 이모가 준 거라고 말씀하시라고. 산타처럼 보였던 신부님처럼, 나도 어린이들에게 답을 거저 줘본다. 그나저나, 이거 주체는 맞는데 수식어까지 답이라 할 수 있나.
뭐, 아이들이 내 얼굴을 모르는데 알게 뭐람. 그냥 예쁜 이모라고 하면 그런 줄 알겠지. 올해의 나머지 열흘을 내 맘대로 질문하고 내 맘대로 답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