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 한 살을 더 먹었습니다

대신 복은 두 배로

by autumn dew

12월의 끝에 태어난 나는,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두 살이 됐다. 그럼에도 어릴 때부터 발육 상태가 좋아 또래에 비해 키는 작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덩치는 늦게 태어난 것과 무관했다. 와중에 생일도 늦은 데다 키도 컸고 성씨의 자음도 뒤편에 속하니 무엇을 기준으로 하든, 학교 다닐 때엔 늘 뒷 번호를 부여받았다. 앞 번호를 받은 건 아마, 여학생에게 앞 번호를 부여했던 중학교 2학년 때 한 번. 그때도 애매한 중간 번호에 내 뒤에 여학생 두 명이 더 있었고 곧바로 남학생들이었다. 아무튼 늘 후순위였던 학창 시절. 그럼에도 나이는 억울하게 내가 제일 빨리 먹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진짜 다음 해에 태어난 것이라면 한 살 어리기라도 하지. 다른 데선 뒤늦게 줄 서게 해 놓고서는 나이 앞에선 갑자기 '뒤돌아서세요' 하고 나부터 받게 하는 느낌이랄까.


늘 생일은 겨울방학이었고,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아본 일도 크게 없었다. 학기 중에 생일인 친구들은 롯데리아나 맥도널드에서 하는 생일파티 초대장을 나눠줬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문구점에서 선물을 샀고 문구점 사장님의 포장 서비스까지 받아 지참금처럼 들고 갔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생각했다. 아, 내 생일은 방학 중이니까 나는 이런 생일 파티 해볼 일 없겠지.



다행히도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맞이한 생일은 그간의 설움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연말이라 내 생일을 더 잘 기억해 줬고 감사실에 근무하며 가급적 무언가가 오고 가는 일을 없게 하려고 생일을 챙기지 않으려 했던 내 마음과 달리, 너무나 많은 이들이 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조바심에 나는 그들의 생일을 챙기지 않았는데 그런 이들마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데, 가지 않아도 오는 게 있었다.




특히나 이번 생일엔 갑자기 짜고 친 것 마냥,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이들이 많았다. 가장 반가웠던 건 못 본 지 10년도 더 된 대학 동기의 연락이었다. 잘 지내냐며. 생일 축하한다며. 나는 내가 아는 네가 맞는지를 물었고 그는 웃으며 맞다고 했다. 잊고 지낸 사이에 그는 결혼을 했고, 안정적인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듯 보였다. 오랜만에 닿은 연락에 그간의 안부를 서로 물으며 각자가 알고 있는 동기들의 근황을 전했다. 엉뚱했던 놈은 나이가 들어도 철없이 엉뚱했고 성실한 놈은 여전히 성실했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이렇게 사투리가 묻어나는 반말로 동갑인 친구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눠본 게 얼마만인지.


몇 년 만에 생일 축하한다고 톡을 남긴 또 다른 친구에겐 내가 전화를 걸었다.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하며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톡보다는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고 '야'하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친구는 여전했고, 여전해서 좋았다. 이틀 후면 한 살 더 먹어야 하는데도 이 친구가 여전하니, 나도 여전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건너온 축하 인사 덕분에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의 안부도 전해 들으며, 서로의 새해 복을 빌었다.



연말이고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마음이 헛헛했던 걸까. 희한하게도 이번 생일엔 여러 사람들로부터, 또 잊고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생일을 핑계로 연락이 닿았다. 연말인사와 새해 인사를 곁들여 건넬 수 있는 생일이라, 간만의 연락이어도 무난할 수 있던 아닐까. 모두에게 한 살 더 먹는 일이 더욱 유쾌한 일이 아니니, 그 핑계로 나이 먹기 대회에 뒤돌아서 제일 앞줄에 서 있는 내가 보였지도. 그 불편한 사실이 오히려 나에겐 반갑고도 다정한 인사가 되어 돌아왔다.


여태 다른 이들에 비해 쉴 틈 없이 나이부터 먹은 것을 보상받는 듯 많은 이들과 연말 인사를 충분히 주고받았고, 그렇게 뒤돌아서 제일 앞에 서 있던 나는 또다시 억울하게 이틀 만에 한 살을 더 먹고 말았다.




대신 넘치는 축하로 지난해를 보내줬고, 덕분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나만큼 들은 이가 없을 듯.


꽤나 괜찮은 생일날의 배치. 받은 인사의 양만큼, 말 그대로 복에 겨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