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의 가운데에서 내려와
그는 거짓말도, 진실도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둘 중에 하나만이라도 잘했더라면 좋았으련만. 알맹이 없이 늘어지는 대화에 갑갑해졌다. 그의 말을 조금은 정제된 문장으로 바꾸어 타이핑해야 하는 나의 수고로움은 안중에도 없는 듯, 그는 의역하기 힘든 말을 쏟아냈다. 어떤 말은 거짓을 포장하려다 실패한 순수한 진실 같다가도, 어떤 말은 상식선에서 용납하기 힘든 거짓 같았다. 최대한 내 본심을 숨기고 싶었지만, 길어지는 대화에 수긍하기 힘든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대화의 말미에 되려 그가 내게 물었다.
"이게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겁니까?"
지쳐버린 나는 일말의 고민 없이 바로 답했다.
"음. 저한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일은 상식적이지 않은 주장과 의견을 제도선 상에 올려놓고 그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일이다. 감사 업무를 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내가 갖고 있던 상식은 수시로 그 모습을 바꾼다.
작은 것들을 확대해 들여다본다. 이렇게까지 파고들고 싶지 않은데 드러난 발견과 상대의 답변이 상식적이지 않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더 깊은 곳의 상식을 찾아 헤맨다. 다른 상식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어. 보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이면을 파고들 때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런 일에 흥미가 있었더라면 진작 법조계로 갔을 텐데. 회사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주는 곳이 아니기에 주어진 업무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심연에서의 내 목소리는 계속 외친다. 더 이상 파헤치기 싫고, 조용히 대충 살고 싶다고. 그 가운데 가장 힘이 드는 것은 지금 내가 중대한 일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 건지, 하찮은 일을 중대하게 여기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도.
대화의 말미. 용을 써가며 의역한 그의 답변을 다시 읽으며, 글자의 여백과 맞춤법을 가다듬는다. 와중에 문서는 깔끔했으면 좋겠다. 사건은 그만 파고들고 싶은데, 문서는 가급적 보기 좋게 마무리하고 싶은 나를 보며 중대한 일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 건지, 하찮은 일을 중대하게 여기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명절을 앞두고 본가로 왔다. 역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지만, 가뜩이나 지친 몸으로 환승까지 하고 싶지 않아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명절을 쇠러 내려온 거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명절을 앞두고 있으니 상식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겠다 했거늘,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님은 외국에 나가 있는 자신의 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윽고 그의 이야기는 과도한 자랑으로 번졌다. 신호가 걸릴 때마다 핸드폰에 저장된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는 딸 자랑을 이어나갔다. 들어보니, 가히 자랑할 만한 딸이긴 했다. 외국에 나가, 얼마의 연봉을 벌게 됐고, 엄청난 외국인 부자를 만나 곧 결혼까지 할 거라며.
잘 났고, 잘난 사람을 만나, 잘 나갈 것이라는 자랑을 계속 늘어놓았는데 머나먼 중동 부자의 이야기라 그런지 그가 언급하는 금액들은 현실감이 없었고 그래서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평소의 나였다면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니 웃으며 들었을 텐데, 유독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애써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큰둥한 반응을 해댔지만, 이런 나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딸 자랑을 늘어놓았다. 점점 그의 딸 자랑이 하찮게 느껴졌다. 잘 알겠고요. 여기 또 한 사람의 딸내미, 제발 조용히 집에 가게 좀 해주세요.
그에겐 중대한 자랑거리가 나에겐 하찮기 그지없었다. 하찮고 중대한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나에게 중대하더라도 상대에겐 하찮을 수 있는 것. 중대함과 하찮음 사이에서 그 경중을 판단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심히 버거웠다. 빨리 이 택시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업무로 만날 또 다른 아무개와의 면담에서도 이렇게 그 하찮음을 빨리 확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장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긴 이동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국내선 비행기를 종종 탄다. 기차에선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기 귀찮고 빠르게 오르내리고 싶어 통로에 앉지만, 비행기는 타게 되면 꼭 창가에 앉는다. 내릴 때까지 옆 사람이 바뀔 일도 없고 동일한 목적지에 도착해, 다 같이 내리면 되니까. 그렇게 오랜만에 올라탄 비행기에서 창밖을 보다 반도체 칩처럼 보이는 아파트들과 개미처럼 오가는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찮기 그지없는 미물들의 세상. 그리고 그 미물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기 또 하나의 미물. 사람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겸손해지기 위함이 아닐까.
한참 그 모든 것이 하찮아질 무렵, 미물들을 내려다보는 이 미물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만들어 움직이는 주체 또한, 조금 전까지 미물이라 여긴 위대한 인간임을 깨닫는다. 역시나 중대하고 하찮은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내 앞에 앉은 이가 나에게 중대한 이야기만 해주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드러난 진실은 중하지 않았으면. 결과는 하찮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일의 결과는 하찮았으면 싶다가도, 내가 하는 일이 하찮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중대한 일을 하고 싶은 미물인 건지, 하찮은 일을 하는 중대한 인간이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친한 후배에게 택시에서의 일화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후배가 그 잘나신 딸의 결혼에 대해 묻길,
"본 부인 맞아요? 42번째 이런 거 아니냐고."
그녀의 재치 있는 반응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게. 그런 거나 물어볼걸. 괜히 억울하네.
중한 것과 하찮은 것, 그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있던 시소에서 잠시 내려와 오랜만의 연휴를 가볍고도 귀중하게 보내려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의역하는 일에 지쳐 내 마음을 의역하는 일도 쉽지 않아 진 것 같으니.